쓰레기 두들기며 노니 매출이 4억5천만원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7.07.31 10:00

[쿨머니, 사회적벤처를 찾아서]<2-1>생태주의 퍼포먼스그룹 ‘노리단’

편집자주 | 일에 몰두할수록 소외감을 느끼십니까? 돈만 바라보고 일하는 삶이 지겨우십니까? 경쟁에 이기기 위해선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여기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벤처라고 불리는 이 업체들은 좋은 일하면서 돈 벌고, 내가 잘 될 수록 남을 잘 살게 합니다. 머니투데이가 신나게 일하고 더불어 잘 사는 ‘다른 기업’, ‘다른 인생’들을 소개합니다.

↑7월 7일 오후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환경재단 주최로 열린 '지구를 살리자 STOP CO2' 행사에서 노리단이 재활용품으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이경숙 기자
7월 초순 시청 앞 광장. 주홍색 놀이복을 입은 이들이 뙤약볕 속에 쓰레기를 신나게 두드린다. 둥, 동, 당, 동, 소리 내는 것들은 은퇴한 차 바퀴, 화학약품을 담았던 플라스틱 통, 버려졌던 페트병들이다. 연주곡은 우리 동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관객들이 저도 모르게 손뼉 치며 추임새를 넣는다.

자기 몸, 남의 몸, 재활용 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는 이들은 생태주의 퍼포먼스 그룹 ‘노리단’(noridan.haja.net) 단원들이다. 결성 3년만에 벌써 싱가포르, 홍콩, 영국, 러시아 각지에서 초청 받는 유명그룹이 됐다.

노리단의 지난해 매출은 4억5400여만원. 2005년보다 1억5000여만원을 더 벌었다. 생태주의퍼포먼스 공연, 재활용악기 제작, 이것을 외부에 가르치는 워크숍이 주요매출처다. 올해부터는 방송 수입도 생긴다. 11월 방영될 KBS의 어린이프로그램 ‘후토스-하늘을 나는 집’에 참여하는 덕분이다.
↑5월 30일부터 5일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안 아트마트에서 공연하고 있는 노리단
ⓒ노리단

노리단 단원 수는 25명. 1인당 매출로 치면 1800여만원 남짓하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은 물론 정착할 집이 마땅찮은 직원들을 위한 공동숙소도 제공된다고는 하지만 박봉을 피할 순 없다. 그런데도 입사 희망자가 줄 서있다. 일하는 만큼 벌고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곳이기 때문이다.

노리단 단원의 급여 체제와 경력, 업무는 노리단의 악기들만큼이나 다양하다. 공연만 하면서 월 35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총괄 업무를 하면서 연봉 2500여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 가장 어린 단원이 10세, 가장 나이가 든 단원이 54세다.

상하? 없다. 업무별 책임자가 있을 뿐이다. 서로 부를 때도 직함, 나이 상관없이 ‘휘’, ‘도리’, ‘미야’ 등 별칭만 달랑 부른다. 이런 문화 속에 나이 어린 단원은 책임감이 높아지고 나이 든 단원은 활력이 높아진다.

차별? 더더욱 없다. 25명 직원 중에 차상위 이하 저소득층이 5명이지만, 업무나 직위만 봐선 그게 누군지 알 수 없다. 학교 중퇴자와 대졸자, 전직 트럭운전사와 예술가, 실패한 자영업자와 성공한 국제문제전문가가 함께 뒤섞여 일한다. 엄마 ‘라임’과 딸 ‘레몬’이 나란히 단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예술과 교육과 놀이를 합하는 것이요, 이들이 다니는 직장은 기업과 학교와 공동체를 합한 곳이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삶이 바뀌는 걸 체험한다. 처음엔 하자센터를 통해 들어온 청소년들이, 최근엔 스스로 찾아온 중장년들이 노리단 속에서 새로운 자유를 찾았다.


노리단 워크숍센터 담당자 ‘피트비트’(김희영)씨 역시 그랬다. 학창시절 스스로 ‘열등생’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별칭을 ‘핏빛솜사탕’이라고 붙였다. 노리단 사람들은 이를 ‘피트’라고 줄여 불렀고, 누군가가 흥겹게 장단을 잘 맞춘다고 ‘비트’라는 말을 붙여줬다. 그는 이제 누가 봐도 총기 넘치고 밝은 20대 직장여성이다.

피트비트는 “노리단은 학교이면서 벤처기업이고 공동체”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겠다”며 중학교를 자퇴한 ‘어리’, 대학에서 하차해 하자작업장학교로 옮겨온 끼 많은 ‘하짱’, 트럭운전사 출신의 사연 많은 악기장인 ‘곤’ 등 다른 단원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학교이자 공동체’라지만 노리단은 엄연히 프로들의 조직이다. 단장인 ‘휘’(김종휘)는 문화평론가로 더 유명하다. 예술감독 ‘도리’(안석희)는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작곡한 유명작곡가다. 교육프로그램매니저 ‘팅’(김희연)은 연극배우, 악기장인 ‘아리만’(장동혁)은 기타리스트다.

이들에게도 노리단은 ‘배움터’가 된다. 사무총장인 ‘미야’(신승미)는 “서로 성장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한다. 라디오 방송작가, 음반기획자를 거친 그는 노리단에서 “여기가 내가 찾던 그 곳”이라고 느꼈다. 내가 성장함으로써 남이, 조직이 성장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노리단 김종휘 단장, 안석희 예술감독, 신승미 사무총장, 김희영 워크숍센터 담당자, 김예리 단원, 김희연 교육프로그램 매니저, 홍대룡 퍼포먼스디렉터, 장동혁 악기장인 ⓒ노리단
노리단은 지난 5월 모태조직인 하자센터에서 독립해 별도법인을 설립했다. 그동안 벌어놓은 현금유보금 중 5000만원을 자본금 삼았다. 지분은 단원 25명이 골고루 나눠 가졌다. 법적으로는 ‘종업원소유회사’지만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비영리사단법인’이다.

단장인 ‘휘’는 “우리의 목표는 한 마디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먹고 살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사회적목적기업이 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단다. “노리단의 공연, 교육, 미술 각 사업 부문이 성장해 문화예술을 하는 다른 그룹들이 우리의 우산 속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 그와 노리단의 꿈이다.

노리단은 사회적기업가와 연구자들한테도 ‘꿈’ 같은 존재다. 소외층의 자활을 목표로 설립된 다른 사회적기업들은 흔히 공동체 의식의 빈곤, 자발성의 결여로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반해 노리단은 구성원의 자발성, 공동체 의식이 높아 재무적, 사회적으로도 지속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엄형식 춘천노동복지센터 운영위원은 “노리단은 현재 사회적기업육성법에서 정하는 사회적기업처럼 취약계층에 사회적 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형태는 아니다”며 “하지만 지역사회와 공동체정신의 활성화, 문화적 혁신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면서 사회적기업의 더 넓은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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