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여수의 눈물

머니투데이 김영권 정보과학부장겸 특집기획부장(부국장대우) | 2007.07.19 12:34

성장과 개발의 욕망에 홀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

한려수도가 곱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바다마을 여수. 이곳 인심이 요즘 예전같지 않은가 보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여수의 한 섬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대문을 세우고, 빗장을 굳게 잠그기 시작했다고 한다. 갑자기 낯선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기웃거리니 평생 울타리 없이 이웃하며 지내던 동네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그런데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이땅저땅 들썩이는 외지인만 타인은 아니다. 동네 사람들끼리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 제각각 계산기 두드리기 바쁘니 이제는 서로 말도 잘 안한다고 한다. 모두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메말라 여유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하긴 내가 봐도 여수에서는 '대박'이 터질 것 같다. 우선 몸매(땅)가 좋다. 스타성을 타고 난 것이다. 스타를 띄우는 매니저도 최정상급이다. 2012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대통령이 선봉에 섰고, 재벌 총수가 총대를 멨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재수생'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탈락했다. 그러니 여수에 쏠리는 정성은 배가 될 것이다.

그뿐인가. 막강한 통일교가 여수에 초대형 리조트를 짓기로 했다. 그 규모가 300만평이 넘고, 쏟아부을 돈이 1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의 이건희 회장까지 땅을 샀다는 뉴스가 나왔다. 여수에 가서는 돈자랑하지 말라더니 여수가 정말 돈방석에 앉나보다.

이쯤되면 제아무리 충무공의 정신이 깃든 지조있는 여수라 해서 흔들리지 않을 재주가 있겠는가. 마을사람들은 들뜨고, 투기꾼은 분주하고, 가진 것 없이 딴죽을 거는 사람들은 배가 아픈 전형적인 '개발장세'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수가 세계적 관광·휴양도시로 거듭난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래도 나는 자꾸 '망가지는 여수'가 떠오른다. 개발과 함께 땅에 묻힐 것들이 눈에 밟힌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 간 욕망의 화신 같은 '개발이익'에 홀려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나. 그것은 너나없이 단숨에 한몫 챙기려는 투기적 '카지노경제' 아니었나. 지금 전세계 시장에서 '돈 놓고 돈 먹기' 식 머니게임을 벌이는 헤지펀드들이 굴리는 천문학적 금융자본은 '천민자본'과 뭐가 그리 다른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감명깊게 읽은 책 명단에 올린 '오래된 미래'. '리틀 티베트'로 불리던 인도 북부의 오지마을, 라다크의 급격한 개방과 도시화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한 이 책은 라다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개발된 세계가 라다크 전통사회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가장 중요한 것들, 즉 자립, 검소, 사회적 조화, 환경적 지속성 및 내면적 풍요와 평화다."

이 책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지난주 방한해 강연을 했다. 그녀는 "성장이 무조건 좋다는 맹목적인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말은 줄기차게 성장과 개발을 외치며 코뿔소처럼 앞으로만 전진해온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이기도 하다.

'행복하지 않아도, 평화롭지 않아도 개발하고 성장해야 한다. 내면의 풍요, 자립과 검소란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돈 많이 벌고 성공하면 모든 게 보장되는 것을….'

혹시 우리는 이런 식의 '집단최면'에 걸린 것은 아닌가. 겉으로만 번쩍거리고 속으로는 초라하고 궁핍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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