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펀드의 합창법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2007.07.05 15:29

[류영재의 좋은투자]보편적 소유주와 수탁자 자본주의의 등장

합창음악의 매력은 실로 장대하다. 관현악도 그렇지만 적어도 내겐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오묘한 브렌딩(Blending)을 연출하는 합창 음악만큼 소중한 음악장르는 없다. 관현악이 귀를 맑게 한다면 합창음악은 영혼을 맑게 하기에.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곧 합창단 활동을 해왔다. 햇수로 30년이 훨씬 넘는다. 이런 내게 사람들은 합창음악의 도사가 됐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건 큰 오해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어렵고, 부르면 부를수록 한계를 절감케 하는 것이 바로 합창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합창 잘 하는 법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선문답 같지만 비법은 아주 단순한 데 있다. 즉 전체의 단원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조화를 꾀하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돌출되어 전체를 지배하거나 혹은 자신이 속해 있는 파트를 주도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늘 살펴야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전체가 조화를 이루면 배음(倍音)의 법칙-사람의 목소리는 완전화음을 가능케 하는 순정율이고, 피아노나 관악기는 옥타브를 인위적으로 반음씩 12등분한 평균율이기 때문에 완전화음이 불가하다-을 통해 합창단원들은 브렌딩의 극치에 도달하게 된다. 피아노반주가 생략된 아카펠라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생겨났다.

따라서 탁월한 성악가가 없이 이러한 브렌딩의 법칙을 이해하는 아마추어들만이 모여도 최고 수준의 합창을 구현할 수 있다. 배음의 법칙이 가세함으로 인해 소리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악가가 있으면 소리로 전체를 제압하기 때문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투자에도 합창음악과 유사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보편적 소유주'(Universal Owner)가 그것이다. 이것은 지난 2000년 미국 세인트 메리대학(Saint Mary's College)의 호우리(Hawley)와 윌리엄(William)교수가 "수탁자 자본주의의 등장"(The Rise of Fiduciary Capitalism)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기업의 소유권은 크게 3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 첫째가 창업자나 그 2,3세들이 소유하고 있는 형태다. 둘째로는 자본시장의 발달을 통해 주주들이 분산되면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다. 이 국면에서는 전문 경영인들이 주로 기업을 컨트롤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주식의 소유권이 연금이나 뮤추얼펀드와 같은 수탁 기관들의 손에 집중되는 단계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연금펀드의 주식 보유비중은 자국 시장의 약 40%에 달한다.


이들 거대 펀드들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다. 또한 대부분의 연금펀드들은 벤치마크 인덱스를 추종하는 식의 종목 구성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포트폴리오에는 전 업종의 다양한 종목들이 편입되어 있다. 이것은 거대 펀드의 수익률이 몇몇 종목들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 종목의 조화로운 수익률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전 종목의 조화로운 수익률이란 바로 경제 전체의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편적 소유주'들은 개별 종목 하나하나의 실적도 평가하지만 그것들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아울러 평가해야 한다. 혹여 특정 보유 기업들이 부정적 외부화를 통해 이익을 취한다면 그것은 전체로 보면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개별종목의 외부화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것은 곧 다른 보유 종목들에게 도미노적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펀드 전체의 수익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 다 준다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한다.

영국의 대학연금펀드(USS)나 미국의 뉴욕시 은퇴연금(NYCERS)은 이러한 장대한 시각을 갖고 '보편적 소유주'의 철학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연금펀드들이다. 예컨대 유틸리티, 정유, 자동차, 항공산업처럼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함으로써(부정적 외부화)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는 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들은 해당기업의 밸류에이션에서 이러한 측면을 반영한다.

한발 더 나가 이들 산업이 일으키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 홍수, 가뭄, 기근, 허리케인, 쓰나미 같은 물리적 재난이 발생하면 그것은 곧 생산시설과 생산력의 감소로 연결되어 국가 및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일으킨다. 따라서 시장의 체계적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러한 부분까지 분석하여 필요하면 경영 관여도 실시한다.

'보편적 소유주'의 투자법은 앞서 말한 합창 잘하는 법과도 일맥상통한다.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보다는 코치의 손놀림을 잘 이해하는 다수의 팀원들이 전체의 운동력을 배가 시키는 스포츠의 원리에도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의 연금펀드가 이러한 장대한 원리를 이해하기까진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모든 펀드 운용자들로 하여금 세계적 합창단들이 즐비한 유럽 여러 나라의 합창콘서트를 매회 감상케 하여 브렌딩의 법칙을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항공료와 체류비, 티켓 값을 지불할지언정 그것이 우리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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