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질'하던 기자, '못질'하려는 대통령

머니투데이 김준형 온라인총괄부장 | 2007.06.18 11:17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지난주말, 노무현 대통령과 기자들의 이른바 '맞짱토론'은 예상했던 대로 노대통령의 완승으로 끝났다.

정권초기 대통령과 맞짱을 텄던 검사들은 지휘권자인 대통령을 거침없이 몰아붙이고 조직 이기주의적 발언으로 일관, 국민들로부터 '검사스럽다'는 힐난을 받았다. 반대로 언론인들은 '기자스럽다'는 말을 붙여줄래야 붙여줄 건덕지도 없이 들러리만 서고 물러섰다.

동료 기자들에게 못질 당했던 추억

기자실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시쳇말로 '책한권' 낼 정도로 머니투데이 기자들도 할말이 많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일간지 기자로 증권거래소를 출입하다가 1999년 10월, 국내 첫 온라인 언론 머니투데이 창간에 합류하면서 '인터넷 기자' 혹은 '사이버 기자'가 됐다. 말이 좋아 '사이버 기자'이지 정확히 말하면 '멀쩡한 기자'에서 '사이비 기자'로 강등됐다.

어제까지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료 기자들', 특히 리얼타임 매체의 등장으로 '속보성'과 '정보독점성'이 흔들리게 된 독점 통신사와, 기자단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주요 언론'들의 조직적, 혹은 개인적 텃새가 대단했다.

기자실에서 즉시 쫓겨나 옆 홍보실 끄트머리 빈책상에 앉아 6개월여를 버틴 끝에 홍보실 안에 조그만 책상과 칸막이를 하나 마련했다. 또 몇달 지나 슬금슬금 이번에는 기자실 안에 책상을 들이밀었다. 사람키보다 더 높은 칸막이로 '정규 기자님'들과 격리시킨다는 조건이 붙었다. 기존 멤버들과의 격리칸막이를 없애고 정식 멤버로 들어가기까지는 2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다음으로 자리를 옮긴 증권업 협회에서는 더 험한 꼴도 봤다. 당시 증협에는 인터넷매체와 신생매체들이 사용하고 있던 '2기자실'과 기존의 '1기자실'사이에 출입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주말 홍보실에서 그 출입문에 못질을 하고 널판지를 댄 뒤 아예 벽지를 발라버린 것이다. 기존 기자단의 간사가 '2 기자실' 기자들에게 동등한 정보접근이 가능하게 해줄수 없다며 홍보실에 '못질'을 요구한 것이다.

"어느 회사의 기자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기사를 쓰는 기자인지가 중요하다. 정보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앞으로 당신들도 어떤 매개체를 통해 독자들을 만나게 될 것인지, 어느 회사 기자로 일하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타사 기자들을 설득하며 울컥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나만 겪은 일도 아니다. 정권초기 재정경제부의 한 국장급 공보관은 기자단에 가입하지 못해 휴게실에서 기사를 송고하고 있던 신생매체 기자들에게 "브리핑때 자꾸 질문하고 그러면 휴게실 문에 못질을 해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러댄 적도 있다.

이 역시 기존 기자단이 압박을 넣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정보를 통제하고 언론과의 '협조'가 힘들어진 공무원이나 홍보실 직원들이 기자단을 핑계로 '호가호위'한 측면도 컸다.


지금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출입처와 기자실들이 없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 정권에서 다시 원상복구되지 않도록 기자실에 대못을 박겠다"고 했지만, 대못박기로 따지면 신생매체의 접근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기존 기자단 멤버들이 한발 앞섰던 셈이다.

이런 행태를 보이던 일부 언론이 앞장서서 갑자기 '언론자유'를 외치고 나서니 '말발'이 잘 안선다. 독재정권 시절, 할말은 안하면서 담합의 달콤한 열매만을 즐겨왔고, 지금은 할말 못할말 안가리는 언론이니 더더욱 국민들에겐 곱지 않게 보일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말하는 '현장'은 어디?

이런 설움을 겪었으니, 기자단의 폐해를 막겠다고 나선 노대통령에게 뒤늦게나마 박수를 보내야 할 텐데 박수가 나오지 않는다. 어렵사리 기자실 멤버로 가입했는데 이제 기자실을 없앤다고 하니 억울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진부하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 때문이다.

기존언론은 기자실에 담을 높이 쌓고, 신생언론은 기를 쓰고 담을 넘으려고 했던 이유는 정보의 접근성이다. 그곳이 바로 '현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현장'으로 나가라고 한다. 하지만 정보가 모이는 곳이 현장이다. 사회부 기자라고 해서 길바닥을 헤매고 다니는게 현장취재가 아니며, 경제부 기자라고 해서 시장통에서 물건값 물어보고 다녀서 제대로 된 기사 한줄 건질수 있는게 아니다.

기자실(혹은 브리핑룸)은 정상공격을 위해 현장 최전방에 마련된 '베이스 캠프'이다. 브리핑룸 체제로 바뀐 이후로는 더 그렇다. 언론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정보 공개를 확대하는데 브리핑룸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브리핑룸을 통폐합해서 줄일게 아니라 더욱 늘려서 언론매체들의 접근성을 높여주는게 맞다. 특히나 사기업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쓰는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은 기꺼이 감시를 받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공무원을 직접 만나지 않고 전자브리핑이나 자발적인 정보공개만으로 충분히 기사를 쓸수 있다는게 정부의 생각인 듯하다.
1주일에 한번씩 기사마감하는 '미디어 오늘' 출신 비서관이나, 정부가 확정해서 발표하는 것만 기사라고 생각하는 국정홍보처, 보도자료보다 마주 앉은 사람의 태도나 얼굴이 더 중요한 취재 단서가 된다는걸 두려워하는 공무원들, 기자생활 해보지 않은 대통령의 경험수준에서나 나올수 있는 말이다.

언론개혁, 제대로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말로만 성질 돋구다가 겨우 한다는게 기자실에 못질하는 것이어서야 대통령 말마따나 '쪽팔리는' 일이다.
기자실 뜯어고치면서 인테리어 업자들 좋은 일만 해주는걸 숱하게 봐 왔는데, 또다시 수십억원 돈을 그런데 쓰겠다니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감시권 밖으로 벗어난 권력으로 인해 우리 호주머니에서 새나갈 돈은 기자실 못박는데 드는 푼돈과는 비교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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