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인 아들도 슬금슬금 학교와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게 심상치 않다. 얼마전 시험때는 며칠을 새벽 두세시까지 공부했다는데 모르고 잠든 내가 미안할 정도다. 도대체 무얼 그리 가르칠 게 많기에 학생들을 저리 들볶나.
나도 지긋지긋한 입시지옥을 뚫고 지나왔는데 그게 대물림이 돼서 또 아이들을 잡고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 그렇게 공부해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사실 남은 것은 별로 없다. 기억나는 것은 '신나는 공부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과 그 숨막히는 공부를 피해 감행한 신나는 '딴짓' 몇가지 뿐이다. 그러니 그 때 조금 더 문제아가 되더라도 '딴짓' 몇가지를 더했더라면 나의 학창시절이 조금이나마 더 풍성해졌을텐데….
"지금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은 대학을 향해 잠시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졸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 교사들은 아이들 잠 깨우고 수업분위기 조성하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는 것입니다.…어떤 때는 잠자고 있는 학생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내가 어떤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인터넷에 올린 글(수업시간 잠만 자는 학생에게도 꿈은 자란다)의 한 대목이다. 선생님들도 광적인 입시교육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스친다.
돌이켜 보면 학교에서 확실하게 배우고 몸에 익힌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인생은 성적순이고, 숨가쁜 경쟁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고, 하기 싫은 것을 꾸역꾸역 해내는 능력이다.
그걸 정말로 뼈저리게 배웠기에 우리는 평생 훗날을 기약하며 산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항상 우선이다. 고등학교 때는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간 다음 자유를 만끽하겠다고 꿈꾼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을 위해 자유의 꿈을 접고 또 성적에 매달린다. 그래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돈 벌고 성공하는 일에 매여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한다. 맹목적으로 일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도 있고, 일 없이는 못살 정도로 일에 중독되는 사람도 있다.
1년에 일에서 풀려나는 기간은 일주일 여름 휴가 단 한차례 뿐인데, 그것도 줄이거나 반납한다. 온전하게 휴가를 쓰는 사람조차 휴가지에서 일을 생각한다. 아니면 맹렬하게 휴가 행사를 치른다. 그러면서 나중에 돈을 벌면 전원에 집을 짓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겠다고 꿈꾼다.
언제나 그 꿈은 내일, 또 내일이다. 설령 전원에 집을 지어도 마음은 그곳에 없을 것이다. 아마 죽을 때도 여한이 많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은 언제나 내일로 미루며 살았으니 하나도 즐긴 게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하라.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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