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총수, 화잘내는 대통령

머니투데이 이백규 산업부장 | 2007.05.22 15:10

[이백규의 氣UP] 화(火)와 국익-기업이익

리더의 화끈하고 불같은 성격은 조직에 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실이 되기 십상이다.

화난 상태, 평정을 잃은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이나 말 한마디의 곤란함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특히 지위가 올라갈수록, 권한이 집중된 자리일수록 리더의 흥분과 분노의 비용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래서 어느 조직이나 의사결정과정에 안전장치가 끼어있기 마련이다. 가정에선 부부가 가끔은 서로 견제하며 보완제 역할을 하고 기업CEO에겐 이사회와 참모들이, 대통령에겐 국회와 언론, 내부의 비서관들이 싫은 소리를 할수 있어야 바람직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직장인의 입장에서 본 '보복폭행' 사건의 핵심중 하나는 '참모의 실패'다. 물론 불같은 성격의 총수가 화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멋대로 분출한 것에서 사단이 일어났지만 주변의 참모와 비서들은 도대체 뭐를 했는지 궁금하다.

전화를 받자 마자 뛰쳐 나가 손쓸 틈이 없었다는 소리도 전해지지만 청담동 현장에까지 가는 동안에 핸드펀은 어디다 모셔뒀단 말인가. 물론 이면엔 평상시에 얘기해봤자 손해이고 불이익 받을게 뻔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문화속에서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선 찍혀도 좋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직언할 충직한 참모가 단 1명 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런 희한한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리더의 그릇될 수도 있을 의사결정을 걸러줄 필터링 시스템도, 몸을 던져 말릴 용기있는 충신도 주변에 없었던게 이 재벌 총수 불행의 씨앗이다.

그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영향력도 심대한 삼성이나 현대차 SK LG 그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파괴력은 엄청났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이들 그룹엔 제왕적 총수도, 막힌 언로도, 직언 못하는 참모도 없는듯 하다. 특히 SK그룹은 "회장님. 그러시면 안됩니다"라는 직언을, 임원도 사외이사도 자유롭게 할 수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어 다른 그룹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정치권력자의 절제되지 못한 화풀이는 총수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이나 베네주엘라의 차베스가 약올린다고 미국 대통령이 화를 못참고 이라크처럼 폭격을 가한다면 지구는 이내 여기저기 쑥대밭이 될 것이다.

정도는 덜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화를 못삭여 손해를 많이 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불의를 보거나 자신이 공격 받을땐 물불가리지 않고 되받아치는 그의 불같은 기질은 가끔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쪽으로도 작용했지만 결국엔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더구나 이른바 '핏대정치'로 인해 측정불가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이미 치루었다.

88년 5공 청문회때 전두환 전대통령에 격노한 노무현 당시 야당의원이 의원명패를 집어던질땐 쇼맨쉽 속에 묻어있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5년후 주요 언론사 경제부장 초청 청와대 만찬 토론회장에서 "너무 반기업적이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내가 언제 기업을 공격한 적 있는냐. 동의할 수 없다. 증거를 대라"고 언성을 높이며 다그칠 때는 쌈닭같은 투지를 읽을 수 있었다.

지금도 핏대를 올리는 대통령을 우리는 9시 TV뉴스에서 왕왕 접할 수 있다.

불도저 이명박, 수첩공주 박근혜, 관리자 손학규 등등. 여러 대선 후보중 누가 잘 발끈하는지, 이를 제어할 참모는 있는지 올연말 대통령을 고를 때 중요한 판단 잣대가 되도 무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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