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세종대왕, 아파트를 돌아보니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 2007.05.18 13:20
얼굴을 스치는 봄바람이 감미롭다. 저녁을 마친 세종대왕은 궐내를 산책하며 양팔을 들어 용포자락 사이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음미했다.

세종대왕은 마음이 편안했다. 문화는 번성하고, 창고에 곡식은 그득했다. 장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북쪽 국경과 해안은 몇년째 전란의 흔적조차 일지 않는다.

내친김에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자 신분을 숨기고 외출에 나섰다. 숭례문을 지나, 만리재, 진고개로 발길을 옮기며 세종대왕의 편안했던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도 백성들이 사는 모습은 비참하기만 했다. 피죽도 먹지 못했는지 핏기 없는 얼굴의 백성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이 사는 집은 집이 아니었다. 맨땅에 판대기로 얼기설기 만들어 바람도, 비도 피할 수 없는 게딱지만도 못한 곳에 사는 백성을 목도하며 세종대왕은 비통함을 추수릴 수 없었다.

읽은 지 오래된 월탄 박종화 선생의 역사소설 '세종대왕'에서 얼핏 기억나는 내용이다. 태평성대를 누리던 세종시대에도 가난한 백성들이 사는 집은 움막만도 못하게 허술하고, 어둡고, 더러웠던 모양이다.

재작년 요맘때 인도 뉴델리에서 북동쪽으로 60Km가량 떨어진 구루가온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외국기업의 허브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신흥도시다. 이곳으로 가는 동안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맨 흙바닥에 나무와 잎으로 엮어 만든 집들은 포로수용소나 난민촌만도 못했다. 2∼3평이나 될까? 막대기에 거적대기 한장을 걸쳐 놓은 어두컴컴한 움막같은 곳에 온식구가 모여 앉아있는 모습도 보였다.

어둠속으로 얼핏 보이는 세간살이라고는 물통과 냄비, 그릇 한두가지 뿐. 식사도 맨바닥에서, 잠도 맨바닥에서 나뭇잎 거적 등을 깔고 자는 듯했다. 이들이 사는 집도 집이 아니었다.


아파트는 집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 식구가 사는 집'을 의미하는 말이 '우리집'에서 언제부턴가 '우리 아파트'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주거문화의 중심이 된 탓이리라.

과거 건설업체 이름으로 아파트를 지어 팔던 시절 소비자들은 '누가 지은 아파트냐'를 따졌다. IMF 환란 이후엔 아파트 브랜드가 시장을 좌우했다. 이역시 '누가 지은 아파트냐'를 차별화한 것이다.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커뮤니티 아파트'가 등장하고 있다. 브랜드 아파트시대가 서서히 퇴조하고, 커뮤니티 아파트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티 아파트시대에는 '누가 지은 아파트냐'가 아닌 '어떤 아파트냐'가 소비자들에게 더 어필하게 된다.

'누가 지은 아파트냐'를 중시할 때는 이웃과 단지의 문화가 없었지만, '어떤 아파트냐'에는 이웃과 문화가 있다. 이것이 지금 서서히 일고 있는 아파트 문화의 새물결이다.

커뮤니티가 형성된 '우리 아파트'에는 재테크 강좌도, 자녀를 위한 미술워크샵도 열리고, 작은음악회가 단지를 수놓기도 한다.'우리 아파트'의 커뮤니티는 이제 불우이웃돕기 등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열고 있다.

세종대왕께서 커뮤니티 아파트를 돌아보신다면 적잖은 외래어가 눈에 거슬리지만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백성을 보면서 적이 흡족하실 일이다.

콘크리트에도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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