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의 피'로 이익..버크셔의 딜레마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7.05.09 10:46

[투자로 좋은 세상 만들기]<8-1> 사회책임투자의 가치충돌


지난주 중국 발해만에서 10억톤 규모의 초대형 유전을 발견했다. 주당순이익은 0.82달러. 주가수익배율(PER)은 12.3배. 아직도 중국 증시 평균 PER(16배)보다 낮다.

중국 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에 대한 얘기다. 가치투자자로 유명한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 회사 지분을 1.3% 가진 2대 주주다. 주식가치로는 33억1000만 달러.

2003년 5월 1.82달러였던 페트로차이나 주가는 지난 7일 10.12달러를 기록했다. 5.6배가 뛰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4년 전 이 회사에 투자했다면 지금쯤 수익률은 456%에 달할 것이다.

◆수단의 비극과 버크셔 주주의 선택

그 4년 동안, 수단 다르푸르에선 민간인 20만명이 죽었다. 많게는 50만명이 죽었다는 통계도 있다. 난민은 200만명에 달한다. 수만명의 어린 아이와 여자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영국방송 BBC는 8살짜리 여자아이 할리마 바시르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증언했다가 당국에 체포돼 고문과 윤간을 당했다고 전했다. 아이를 윤간하면서 당국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진짜 강간이 뭔지 보여주겠다.”

페트로차이나의 주가와 수단의 비극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페트로차이나는 중국 국영 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의 자회사다.

CNPC는 수단의 원유매장량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40억 달러를 수단에 투자했다. 2005년엔 25억7000만달러어치 원유를 수입했다.

수단 정부는 이 돈으로 무기를 산다. 민병대 ‘잔자위드’는 이 무기로 다르푸르에서 학살극을 벌인다. 다르푸르는 아프리카 토착세력을 대변하는 ‘수단해방군(SLA)’의 중심지다.

잔자위드가 학살과 성폭행을 벌이는 명분은 하나다. ‘아랍의 피를 아프리카에 이식한다.’ 수단의 모든 이권을 독차지한 아랍계의 수단 정부가 잔자위드를 결성했다.

5일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일부 주주들은 페트로차이나 지분을 매각하라는 안건을 상정했다. 그러나 버크셔 주주 2만4000여명 중 98.2%가 반대했다.

워런 버핏은 "페트로차이나가 모기업인 CNPC에 대한 영향력이 없다"며 지분 매각을 반대했다. 모기업이 저지른 일에 대해 자회사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사회책임투자의 딜레마, 가치 충돌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버핏은 자기 전 재산의 85%,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가 세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상속세 폐지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내 자식들은 능력주의를 지향하는 이 사회에서 엄청나게 유리한 출발을 했다"며 "거대한 부의 대물림은 우리가 평평하게 만들어야 할 경기장을 더욱 기울어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핏의 별명은 '오마하의 현인'이다. 오마하는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있는 인구 39만명의 작은 도시로,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가 있는 곳이다. 76세의 버핏은 '전설적 가치투자자'이자 시민으로서 존경 받는 인물이다.


버핏과 버크셔 주주들의 페트로차이나 투자는 사회책임투자(SRI)의 가장 큰 딜레마를 건드린다.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충돌할 때 투자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선 재무적 가치를 따져보자. 홍콩(H)증시에서 페트로차이나는 중국판 '삼성전자'다. 페트로차이나의 시가총액은 2321억 달러로, H증시의 14%를 차지한다.

오재열 한국투자증권 중화시장분석팀장은 "중국 A증시, B증시까지 포함해도 페트로차이나의 시가총액은 범중국증시 부동의 1위"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증시에 투자하려면 페트로차이나 투자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국펀드 모두 페트로차이나 보유

국내 판매 중국 펀드들도 모두 페트로차이나를 보유하고 있다. 변귀영 모닝스타투자자문 팀장은 "페트로차이나 주식이 중국 펀드에는 5~10%, 대만 포함 중국권 펀드에는 2%, 일본 제외 아시아펀드에는 1% 정도 들어가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해외에서 직접 운용하는 해외펀드들도 보유 비중은 비슷하다. 최근 공개자료 기준으로 신한봉주르차이나주식은 자산의 8%, 동부차이나주식1은 4%를 편입했다.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1은 7%, 미래에셋차이나디스커버리는 4.7%를 페트로차이나 주식으로 보유했다.

그렇다면, 평화주의자인 투자자는 중국 펀드 투자를 포기해야 할까? 애초에 중국 투자에 관심이 없다면 모를까, 페트로차이나 투자를 포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가치 충돌의 딜레마는 한국 주식 투자에서도 일어난다. 시가총액 상위종목인 삼성전자나 신세계를 편입하지 않는 국내 주식펀드는 거의 없다. 무노조 경영에 반대하는 노조활동가나 대형할인마트 입점에 반대하는 영세상인은 국내 주식펀드 투자를 포기해야 할까?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러한 가치 충돌은 앞으로 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투자자 대부분은 기업에 배당, 시세차익 등 투자수익 증대만을 요구한다. 대주주 지분이 낮아진 다국적 기업에선 전문경영인들이 경영실적을 위해 단기적 성과 올리기에 치중한다.

◆8조 달러 규모 기관들, 책임투자원칙에 서명

해법은? 결국은 인해전술뿐이다. 홍 센터장은 "시장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길 원한다면 사회책임투자자의 수와 투자금액이 늘어야 한다"고 말한다.

버크셔의 주총처럼 주식시장에선 1주1표의 다수결이 지배한다. 다수 투자자의 투자 철회는 기업에 무엇보다 강력한 채찍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책임투자자 다수는 '채찍'보다는 '당근'을 선호한다. 장영옥 기업책임시민센터 사무국장은 "사회책임투자의 시초로 꼽히는 미국 카톨릭 신도들은 투자철회에 앞서 주주 제안 등 주주 행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수익을 함께 실현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한다.

유엔이 주도하는 책임투자원칙(PRI)에 가입한 투자기관은 캘퍼스, ABP 등 세계 최대 연기금을 포함해 최근까지 180곳으로 늘었다. 이들 기관이 보유한 자산만 해도 8조 달러, 우리 돈 7500조원에 가깝다.

PRI서명기관은 대부분 연기금, 은행, 보험 등 장기투자자다. 기업이 오래 성장해야, 연금 가입자가 많아야 살아남는 기관들이다. '상생'이 관건인 이들 투자기관이 과연 가치충돌의 딜레마를 풀 수 있을까. '사회책임투자'라는 자본주의의 대안은 지금 최대난제를 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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