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잠망경]팬택이 살아남는 길

윤미경 기자 | 2007.04.23 08:30

한치의 오차 없는 생존전략만 통한다..과거 철저히 부숴야

지난해 1월로 기억된다. 당시 집무실에서 만난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3월이면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같다"면서 그 때가서 소주 한잔 기울이자고 환하게 웃던 때가.

물론 그 이후로 박 부회장과 '소주한잔' 기울일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팬택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요청했고, 이후 4개월간의 오랜 진통끝에 마침내 지난 19일 워크아웃이 결정됐다.

대한민국의 '벤처신화'로 불리던 팬택이 어쩌다가 하루아침에 이 신세가 됐는지에 대해 새삼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어쩌면 예고된 위기였는지도 모른다. 내수 위기를 SK텔레텍 인수로 돌파하려고 했던 전략이 오히려 자금압박을 가중시키는 독이 됐고, 설상가상으로 내수뿐 아니라 해외 휴대폰 시장까지 찬바람이 돌면서 자금상황은 더욱 나빠졌던 것이다.

천신만고끝에 채권단의 워크아웃 결정을 얻게 된 팬택은 이제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팬택에게 주어진 시간은 5년뿐이다. 앞으로 5년동안 빚독촉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이자부담도 덜 수 있으니 신발끈을 고쳐매고 5년내 워크아웃 탈피를 향해 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변상황은 녹록치않다. 문제는 어디를 향해 뛰어가야 하느냐다. 이에 대해 팬택은 '수익성' 회복을 역점에 두는 전략을 펼치겠다고 밝히고 있다. 내수시장은 핵심모델 위주로 라인업을 재편하고, 해외시장도 고부가가치 제품비중을 높여 모델당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국내외 모두 '선택과 집중'으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팬택이 이동통신 3사의 협조 아래 제아무리 내수시장 판매를 늘린다고 해도 연간 400만대를 소화하기 힘들다. 연간 1800만대로 추산되는 휴대폰 내수규모에서 팬택이 차지할 수 있는 비중은 최대 20% 정도다. 26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팬택이 현재의 기업규모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에서 연간 최소한 700만대 가량은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다.


팬택이 워크아웃 기간동안 지원받는 신규 운영자금은 1200억원 규모. 이 자금은 5월말 이후에나 지급 가능해질 것으로 보여, 팬택은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채권단 동의 아래 상암동 사옥을 매각한 금액 가운데 800억원을 우선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800억원으로 생산할 수 있는 휴대폰 대수는 50만대를 넘기 힘들다. 800억원 외에 워크아웃 지원잔금 400억원을 추가로 받는다고 해도 생산은 빠듯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팬택은 지금 '한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외 수출모델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내세울 바가 못된다. 개발모델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을 뿐더러, 모델당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생산할 수 없는 구조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을 늘린다고 호언장담할 바도 못된다. 안팔리면 끝장이다. 연구개발(R&D)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첨단기능이 아닌 컨셉트로 승부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휴대폰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살얼음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휴대폰업계 1위인 노키아는 2007 회계년도 1분기 순이익이 감소했고, 모토로라도 적자로 돌아섰다. 어제 웃었던 기업이 내일도 웃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바로 휴대폰 시장이다.

적자생존의 법칙만 통하는 '정글'에서 팬택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부터 철저히 부숴야 한다. 3조원 매출은 옛 영화다. 시장에 맞는 몸집을 만들어야 산다.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의 합병을 통해 중복 조직을 없애는 것은 물론 개발조직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브랜드가 걸림돌이라면 브랜드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팬택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다. 채권단은 5년의 세월을 허락했을지 몰라도, 시장은 5년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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