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에 '인증의 덫'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7.04.09 18:16

공정무역 등 사회적 목적 기업 배제돼...7월 시행 예정

올 7월 이후 일부 사회적기업들이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되는 위기에 처했다.

노동부가 지난 2일 입법예고한 사회적기업 육성법(이하 육성법) 시행령은 취약계층을 50% 이상 고용한 곳이나 사회서비스 비중이 50% 이상인 곳에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기로 했다.

이 시행령은 사회서비스의 범위를 △교육 및 보육서비스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 △문화ㆍ예술ㆍ관광 및 운동관련 서비스 △산림환경ㆍ집수리ㆍ재활용 등 환경서비스로 정했다. △공공장소ㆍ건물 및 기타사업장 청소서비스 △간병 및 가사 지원서비스도 포함됐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취약계층은 △실제 소득이 전국가구 월평균소득의 60% 이하이거나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른 고령자 △장애인 △성매매 피해여성 △장기실업자로 제한됐다.

이에 따라 공정무역 업체나 사회사업을 위해 영업행위를 하는 업체는 사회적기업 인증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회서비스'에 사회사업이, '취약계층' 범위에 재외동포 등 해외 빈곤층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인증을 받지 못한 사회적 목적 기업들은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도 쓸 수 없다. 육성법 19조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지 못한 곳에 대해선 사회적 기업이나 유사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목적 기업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 동북아평화연대가 만든 '바리의 꿈'은 러시아 연해주 동포들이 만든 청국장을 들여와 팔고 판매수익으로 다시 가난한 동포를 돕는다. 여성환경연대도 올 5월, 인도 등 빈곤국을 돕는 공정무역업체 '희망무역'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온라인유통업체 '꽃피는아침마을'은 매출의 1%를 모아 '아침편지문화재단'의 사회사업을 지원한다. 이 재단 출신인 최동훈 '꽃피는아침마을' 대표는 "임직원 모두 재단 활동가 출신으로, 재단의 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회사를 창업했다"고 전했다.

황광석 바리의꿈 대표는 "공정무역은 제3세계 저임금 노동자 착취라는 사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익 전액을 사회사업에 쓰는 기업, 공정무역 등 경영행위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기업도 사회적기업으로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희 기부정보가이드 대표는 "인증제도를 통해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게 되면 인증을 받지 못한 사회적기업이 상대적으로 배제되는 부작용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며 "영·미권처럼 인증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구분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선 자선활동을 위해 수익활동을 벌이는 기업들이 늘자 지역사회투자기업(CIC)법을 만들어 이들을 지원했다. 미국 정부는 지역사회개발투자기관(CDFI)기금법을 통해 민간과 매칭펀드 형태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융자를 지원한다.

박성희 노동부 사회서비스일자리정책팀장은 "모금 목적 기업이나 공정무역 기업은 취약계층 고용 등 다른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한 육성법의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사업도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 활동가들은 국내에서도 사회적기업 지원이 꼭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사회적 목적으로 창업되는 기업, 사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곳들은 지금 일반 기업과 똑같이 각종 의무를 지고 있다. 헌옷 등 기증 받은 물품을 판매하는 '아름다운가게'는 지난해 86억여원의 매출을 올려 20억원을 세금으로 냈다. 취약계층 지원에는 18억원, 다른 시민단체 지원에는 2억원을 썼다. 사회사업을 한 만큼 세금을 낸 셈이다.

송기호 아름다운가게 정책국장은 "원래 부가가치세는 원가를 제외한 부가가치에 붙는데 아름다운가게 제품은 기증 받은 물품이라 원가가 없어 매출 기준으로 세금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20억여원의 세금만 덜 낼 수 있었어도 취약계층 지원에 그 돈을 더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편, 노동부는 이번에 입법예고된 시행령에 대해 21일까지 의견서를 접수 받는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안, 국회 상임위 통과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4. 4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5. 5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