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시기사를 인터뷰하다-2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7.03.27 12:30

[일상속에서]택시기사도 머리 쓰는 직업(?)

비행기 창 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우리나라였다. 비행기 바퀴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닿는 순간, 신혼여행의 달콤한 꿈에서도 깨어나야 했다.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탔다. 집 근처인 영등포까지 왔다. 신혼여행을 갈 땐 간단하게 꾸렸지만, 이런저런 선물로 짐이 많이 늘었다. 영등포역 앞에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짐을 트렁크에 싣는 순간, 뒤에 오던 버스의 기사가 경적을 크게 울렸다. 아무리 혼잡한 3거리였지만 그 잠깐도 참지 못하다니. 전용차선도 아닌 인도 바로 옆인데. 다니라는 차선에서 벗어난 건 자신이면서 말이다.

택시 기사님과 함께 버스 기사의 흉을 봤다. 홧김에 운수회사와 차량번호를 적어 고발해버릴까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불쾌했을 택시기사가 말렸다. 요즘 제도에선 민원이 들어올 경우, 자칫하면 해고될수도 있다고 했다.

하긴 내 기분이 나쁘다고 남의 밥그릇까지 엎어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버스기사의 나은(?) 처지를 부러워하며 불쾌감을 풀었다. "요즘 운전하시는 분들이 버스 기사 자리를 알아보려고 줄을 섰습니다. 공영제가 되면서 근무조건이나 급여조건이 아주 좋아졌거든요."

하지만 영업용 택시 기사의 근무여건은 아주 열악하다고 했다. "한달에 4일 쉬고,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사납급을 채우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사납금만 겨우 채우면 경력에 따라 겨우 한달 70∼100여만원 밖에 못 가져 갑니다."

택시 기사님의 나이는 50이었다. 3년전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퇴직한 후부터 택시기사를 시작했단다.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2명의 딸을 키우고 있었다. 어떻게 가정을 꾸려 나가시는 걸까.

"전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않습니다. 또 교대하지 않고 하루종일 일할 때도 많구요, 그래서 대략 한달에 200만원 이상은 벌어요. 그걸로도 부족하지만 겨우겨우 꾸려가집니다. 힘들지만 두 딸이 착하게 잘 커가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또 그저 길게 일한다고 해서 수입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납금 이상을 벌기 위해 저도 머리를 많이 씁니다." 사실 우리 역시도 그 기사님이 머리를 쓴 결과, 그 택시를 타게 된 것이었다.

"손님께서 건널목을 건너오시는 모습이 택시를 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택시 한 대가 더 있었으니 그걸 탈 확률이 더 높았죠. 제 앞 택시는 교차로에 비스듬히 대고 있었고, 저도 따라 비스듬히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널목 건너오시는 분들은 대개 비스듬히 선 방향쪽으로는 잘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를 3미터쯤 뒤로 빼서 건널목 바로 앞에다 댔죠. 그랬더니 손님께서 방향을 알 수 없는 제 앞 차를 타지 않고 제 차를 타시더군요."

얘기를 듣다 보니 이내 집에 도착했다. 내리는 우리 부부에게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는 택시 기사님을 보며 속으로 부끄러웠다. '난 과연 저런 성실한 가장이 될 수 있을까, 난 정말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남을 부러워하며 내 처지에 불만만 늘어놓았던 건 아니었을까?'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마라. 너희 할아버지는 그 일을 기회라고 생각하셨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관련 기사 보기]
어느 택시 기사를 인터뷰하다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4. 4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5. 5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