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위임장대결과 주주평등 원칙

김상곤 변호사 | 2007.02.26 09:51
로펌에서 근무하며 기업의 법률 자문을 주로 하는 필자로서는 해마다 이맘 때면 기업 고객으로부터 정기주주총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자문을 요청받는다. 그리고 몇년 전부터 늘어난 자문 요청 중 하나가 '위임장 대결'에 관한 것이다.

주주총회 결의는 '출석한 주주들의 주식 수' 중 '찬성 결의를 한 주주의 주식수'를 합산해 결의 통과 여부를 판단한다. 따라서 주총 의안에 대해 서로 반대 의사를 가진 주주들이 있으면 다른 주주들의 표를 서로 자기 입장을 지지하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위임장을 받아 대리인 자격으로 표결에 나서기도 한다.

이때 주주들에게 위임장을 많이 받기 위해 경쟁하고, 받은 위임장으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하는 것을 증권거래법상 용어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라고 하고 쉽게는 '위임장 대결'이라고 한다. 지난해 KT&G (88,900원 ▼100 -0.11%) 주총에서는 칼 아이칸과 KT&G 경영진을 지지하는 주주간에 위임장 대결이 벌어져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KT&G의 경우에서 보듯 위임장 대결은 흔히 적대적 M&A에서 많이 사용된다. 즉, 적대적 인수를 시도하려는 측과 이를 방어하려는 측의 주식수가 비슷하면 승패는 소액주주들의 표에서 갈리게 되고, 따라서 서로 소액주주들로부터 표를 확보하기 위해 위임장을 받기 위한 경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임장 대결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주주들의 대결이고, 그에 따라 회사 경영권의 향배가 결정될 수도 있으므로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증권거래법은 상장법인의 주주 10인 이상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으려면 일정한 사항을 금감원에 신고하고, 위임장을 받는 절차에 관해서도 증권거래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증권거래법이 정한 절차는 과연 공정한 것일까. 통상 위임장 대결은 회사의 기존 지배주주와 새로 회사의 경영권을 가지려고 하는 적대적인 주주 사이에서 벌어진다.

기존 지배주주는 회사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해당 회사를 '위임장 권유자'로 금감원에 신고하고 그 직원들을 동원해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을 받아 오게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조합이 회사의 경영권이 넘어가면 구조조정이 단행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기존 지배주주를 위하여 위임장 권유자가 되기도 한다.


주주는 주식을 발행한 회사로부터 평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위임장 대결에 있어서는 주식을 발행한 회사가 특정 주주에게는 극도로 적대적이고, 기존 지배주주에게는 회사의 비용을 들여 직접 위임장을 걷어주는 등 과도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위임장 대결이 주주간 경쟁이 아닌, 해당 회사와 그 주주간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는 증권거래법이 해당 회사가 위임장 권유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해당 회사는 위임장 권유자가 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게 따로 업무를 맡기도록 하고 있다.

필자는 변호사로 여러 번 위임장 대결에 참여해 보았다. 물론 고객이 회사의 기존 지배주주인 경우도 있고, 새로이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려고 하는 주주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 회사로부터 받는 대접은 당연히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그때마다 머리 속에는 주주평등의 원칙은 어디로 갔는지, 회사가 특정 주주에게 이렇게 적대적으로 대해도 정말 괜찮은지 등등 많은 물음이 오간다.

PEF 등의 등장으로 M&A는 이제 일상사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도 미국처럼 위임장 대결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기존 '싸움의 법칙'을 재고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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