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화장하는 남자, 유상옥 회장"

대담=이백규산업부장, 정리=박희진 기자,사진=임성균 기자 | 2007.02.26 10:08

[머투초대석]유상옥 코리아나 회장..'미'(美)를 초월한 '자'(姿)의 경영

"화장부터 해야지"

이내 비서가 들어온다.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얇게 펴 바르고 파우더팩트를 톡톡 두드리듯 바른다. 브러쉬로 가볍게 피부결을 정리한다. 눈썹 화장도 잊지 않는다.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74세)의 인터뷰 준비 모습이다.

'화장하는 CEO'로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고희를 훌쩍 넘긴 '회장님'의 즉석 '화장 퍼포먼스'에 기자는 신기하기만하다.

그러나 신기함도 잠시. '미의 향연' 화장품 업계의 원로 경영인다운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진다.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모든 인간의 욕망. 유상옥 회장은 몸소 '미'의 실천을 통해 지난 30년간 화장품 업계와 함께 해왔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미의 CEO..문화경영

'미'에 대한 유 회장은 애착은 남다르다.

이는 그의 집무실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의 여신' 비너스상 수십점을 비롯해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로드 달리의 '기억의 영속성'이 떠오르는 조각품, 도자기, 회화, 서예 작품이 가득 진열돼 있어 '미니 미술관'을 방불케한다. 최근 설 연휴 동안 미얀마로 '아트투어'도 다녀왔다.

"그림을 사려고 갤러리를 갔는데 미얀마는 카드 결제가 안돼서 수중에 있는 돈으로 사다 보니 거의 사질 못했다"

재계에서 소문난 '수집광'다운 말이다. 40년간 모은 화장품과 관련된 유물만 6000여점이 넘는다. 세계 각국의 종을 모은 벨 콜렉션도 1000여점에 달한다.

1969년 동아제약에 근무하던 시절, 인사동 골목과 고물상을 다니며 미술품과 유물을 접하면서 안목을 키웠다.

이때부터 쌓은 남다른 심미안은 1977년 대표를 맡은 라미화장품에 이어 1988년 쉰살이 넘은 나이에 코리아나 화장품을 창업해 성공을 거두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

유 회장의 '수집벽'은 혼자만의 고상한 취미로 끝나지 않는다. 2003년 강남구 신사동에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스페이스C'를 열어 일반인과 나누고 있다.

"기업가는 기업과 문화를 남겨야 한다"는 '문화경영'의 실천인 셈이다.

"비즈니스와 콜렉션을 연계하면 문화 마케팅이 된다. 기업가가 혼자만 잘 살면 되겠나. 문화를 통한 사회적 공헌에 노력하고 있다"

작년엔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개인 수집품 중 1000여점을 추려 파리에서 '한국화장문화 전시회'를 열어 한국의 미를 알렸다. 최근에 문화관광부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다.

근현대 작가들의 미인도를 한자리에 모은 '자인전'에 이어 내달 8일에는 한국의 천경자 화백에 비유되는 프랑스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의 작품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최근 프리미엄 화장품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인'(姿人,ZAIN) 출시에 맞춰 한국의 미, 나아가 세계의 미를 알리기 위한 자리다.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를 미인이라고 합니다. 자인은 자태도 아름다운 맵시있는 여자를 말하지요"

'자'는 아름다운 얼굴에 품위, 자신감이 더해진 한 단계 높은 '미'라는 설명이다. '미'를 넘어서는 '자'는 기업이라는 유형에 문화라는 무형의 산물까지 남기려는 유 회장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젊은' CEO..열정과 도전

인터뷰 도중 유 회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봄도 다가오는데 넥타이를 좀 더 화사한 걸로 바꿔 매야겠어"

하고 있던 빨간색 넥타이 대신 파란색 넥타이를 들고 오더니 솜씨좋게 다시 맨다.


"정말 젊어보이십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더욱 젊다.

"젊으니까 젊어보이죠"

40대 CEO 대부분인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유 회장은 가장 '젊은' CEO다. 40대가 부럽지 않은 열정과 도전정신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넘쳐나는 열정으로 성공을 일궈냈다.

동아제약 시절, 1977년 마흔넷의 나이에 월 매출 7000만원에 적자가 23억원이나 되는 계열사 라미화장품의 대표를 맡게 됐다. 화장품에 문외한이었던 유 회장에게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회사를 키워보겠다는 불타는 열정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라미화장품을 5년만에 흑자 회사로 일궈냈다.

도전은 끝이 아니었다.

유 회장은 87년 노사분규로 일대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그는 노사분규에 책임을 지고 10년간 몸담았던 라미화장품을 떠나 계열사 동아유리로 밀려났다. 이때 일은 유 회장 일생에 가장 힘든 시기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이 '보약'인 그에게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 외엔 할일이 없는 동아유리 대표직은 '고통' 그 자체였다.

결국 유 회장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서 89년 쉰다섯의 나이에 자본금 1억원으로 코리아나를 창업, 제3의 경영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창업 5년만에 코리아나를 업계 3위로 올려놓으며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다.

#팔방미인 CEO..배움의 기쁨

"날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선물을 하나 드려야죠"

2002년 출간된 유 회장의 경영 에세이 '화장하는 CEO' 한 권을 내민다. 표지 한장을 넘기고 기자의 한자 이름을 묻더니 멋들어지게 써내려간다. 서체가 예사롭지 않다.

유 회장은 성공한 경영가, 수집가 뿐만 아니라 서예가, 수필가, 수집가로도 정평이 자자하다.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이자 국제펜클럽 한국지부 회원인 유 회장은 책을 다섯권이나 출간했다. 1993년 수필집 '나는 60에도 화장을 한다'를 시작으로 '33에 나서 55에 서다', '화장하는 CEO', '문화를 경영한다' '우리들의 10년'을 썼다.

유 회장의 다양한 '타이틀'은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갈망'의 결과다.

"공자 말씀에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불역열호)라는 말이 있지 않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

유 회장은 동아제약에 입사하고도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입사 2년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고려대학교 석사, 미국 유니언 대학 박사학위,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등 향학열을 불태웠다.

고희를 넘긴 그에게 '배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약력

△1933년 충남 청양 출생△덕수상고, 고대 상과대학 상학과 졸업, 고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미국 유니온 대학 박사 △1959년 동아제약 입사 △1997년 라미화장품 대표이사△1989년 코리아나 화장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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