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시 기사를 인터뷰하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7.02.19 00:29

[일상속에서]실패한 전직 사업가의 이야기

1. 기자는 택시를 탈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조수석에 앉는다. 택시 기사님들에게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심심하지도 않고, 이모저모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야말로 '가재 잡고 도랑치기'다.

최근 외부 필자 한 분에게 저녁을 대접하는 자리가 있었다. 장소를 옮겨 술 한잔을 더 하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대중교통이 끊어져 택시를 타야했다. 불경기라는 말이 무색했다. 시내에서 택시 잡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 20여분 이상 거리에서 떨어야 했다.

겨우 한 대를 잡아 타고, 목적지인 우리 동네를 기사님에게 알려줬다. 그 기사님은 자신도 얼마전까지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고 했다. 뭐든 공통점이 생기면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강릉 출신이었고 50대였다. 전자부품 유통사업을 꽤 크게 하다가 2년전 부도를 맞아 택시 기사일을 하게 됐단다.

다른 이들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 택시 기사님과 밀도있는(?) 30여분간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 우리 모두가 새길 만한 현실적인 교훈 몇 가지를 던져 주었다. (지금부터 편의상 그 기사님을 A씨라고 칭한다)

2. 지난 20여년간 A씨의 사업은 순항이었다. A씨는 늘 신용을 지키려고 애썼다. 대인관계도 좋아 업계 동료 사업가들과도 잘 지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가족간에도 화목했다. 그러나 1997년 불연듯 닥친 외환위기는 이 모든 것을 뒤흔들어놓았다.

외환위기 직전, A씨의 아내는 사업을 하는 남편을 돕고자 주점을 시작했다. 크게 시작했던지라 돈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여파로 장사가 되지 않았다. 들인 밑천이 아까워 억지로 계속 유지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초기 투자비를 포함, 대략 3억원 정도를 까먹게 됐다.

A씨의 본업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IMF한파에 매출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다 부인의 장사에 3억원이나 들어가다 보니 자금흐름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동안 잘 닦아 놓았던 신용 덕분에 사업은 이후 몇 년간 이어졌다. 그 와중에 사업하는 친구들이라면 모조리 돈을 꿨다. 고향 친지들의 도움도 얻었다. 심지어 사채도 끌어다 썼다. 그러나 한번 꼬인 흐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결국 부도를 맞았다. 그동안 늘어난 부채는 모두 20억에 달했다. 집을 포함해 가진 재산 모두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지하 단칸 월세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채업자를 피해 숨어지내야만 했다. 사업하던 동료들끼리 하던 계모임은 물론이고,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했다. 한동안 강소주를 마시며 절망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래도 인간관계가 좋았던 덕분에, 사업을 하던 지인들은 대부분 A씨에게 빚을 탕감해주었다. 그들은 어렵사리 연락이 되면 술이라도 사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A씨는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힘을 내야 겠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A씨는 아들 둘을 불러놓고 "아버지가 어떻게든 돈을 벌테니 너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A씨는 그래서 택시 일을 시작했다. 얼마되지 않는 봉급이었지만, 꿋꿋히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큰 아들이 와서 "아버지 3000만원만 어떻게 마련해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물었다. 사연은 이랬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아들이 동대문에 조그만 가게를 얻어 옷 장사를 해보겠다는 것.

A씨는 사업을 하는 동안, 친목계를 하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못 받을 것을 알면서도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다. 그저 어린줄만 알았던 아들은 굉장히 수완이 좋았다. 6개월만에 빌린 자본금을 다 갚을 정도였다. 지금도 계속 번창하고 있단다. 아들은 A씨에게 "조금만 기다리시면 최소한 고향분들에게 진 빚이라도 제가 다 갚고 아버지도 편안히 모실께요. 그때까지 조금만 더 참으세요"라고 했다고. A씨는 그래서 택시 기사 일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에겐 희망이 있었다.

3. 이야기를 다 듣고선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부인에 대한 원망이 없었는지를 A씨에게 물었다.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딴엔 잘해보려고, 저와 우리 가정를 도우려다 잘못된 것인데 그걸 탓할 수는 있나요. 모든 걸 다 잃었는데 아내와 가족마저도 잃을 순 없지 않습니까."

어느덧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누군가에게 문드러진 속내를 털어놓았던 게 후련했던지, A씨는 괜찮다면 자기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달라고 했다. 요금을 치르고 나서 5분 정도 더 차 안에 머물렀다.

A씨는 몇가지 충고를 해주었다. "뭘 하더라도 부인과 꼭 의논해서 하세요. 배우자끼리 잘 의논해서 하면, 잘못되더라도 가정이 깨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의논하지도 않은 채, 아니면 배우자가 싫어하는 일을 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가정이 깨지기 십상이지요. 가족만 깨지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A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명심해야 할 3가지를 들려주었다. "먼저, 자금 계획을 잘 세워 항상 만약을 대비한 여유자금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사업에 실패했던 건 바로 자금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과 대인관계를 잘 쌓아둬야 합니다. 예전엔 제가 능력이 있어서 사업을 잘 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지나고 보니 주위에서 잘 도와줘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원칙은 이랬다. "종업원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종업원들이 9시에 나오면 사장은 8시에 나와 청소라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직원들은 사장이 월급을 주니까 겉으로는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장이 존경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마음속으로는 욕을 합니다. 또 모범을 보여야 굳이 소리지르지 않아도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구요."

거기에 더해 그는 한 가지 현실적인(?) 팁을 더 알려주었다. "사업하다보면 이런저런 접대를 많이 하게 됩니다. 이 접대를 능률있고 효과적으로 하려면 접대를 해야 할 대상이 뭘 좋아하는 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진저리를 칠 정도로 같이 술을 먹어야 하구요,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술을 먹는 것보단 집으로 좋은 선물을 보내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헛돈도 안 들고 효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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