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계급과 창조 경영

머니투데이 뉴욕=유승호 특파원 | 2007.02.05 09:07
미국 정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40대 흑인 상원의원 배럭 오바마가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를 찾아갔다. 러시아 태생의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신입사원 50명이 모인 곳으로 그를 안내했다.

신입사원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이었고 백인 가운데 상당수가 동유럽계 이름을 가진 것을 보고 오바마는 놀랐다. 더욱이 흑인, 남미계는 한 명도 없었다. 안내자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외국인 엔지니어에 의존하는데 '9.11'이후 그들이 비자 받기 힘들어졌다. 미국 경제에 안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그의 베스트셀러 '희망의 대단함(The Audacity of Hope)'에서 구글 방문기를 이렇게 싣고 있다.

◇흔들리는 골리앗 미국..창조적 인재 흡입력 떨어져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조지 메디슨대)는 '창조적 계급의 비행(The Flight of the Creative class)'이란 저서를 통해 오바마의 실리콘밸리 경험을 "미국이 금세기 만난 최대 위기"라고 지목했다.

그는 '9.11'이후 엄격해진 비자 심사가 '창조적 인재'의 유입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학생 비자 거부율이 35%(2003년)로 올라선 뒤 내려가지 않고 외국인 대학원 입학시험(GRE) 응시율도 30%이상 줄었다고 한다.

경제의 경쟁력은 3T, 즉 기술력(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의 3요소가 결정하며 '관용'이 가장 핵심이라는 게 그의 이론이다.

플로리다 교수는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했던 인물중 상당수가 '수혈 인재'였음을 상기시킨다.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 인텔을 탄생시킨 헝가리 출신 앤디 그로브,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러시아), 야후 창업자 제리 양(대만),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어(프랑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공동창업자 비노드 코스라(인도) 등을 미국으로 끌어들인 힘이 '관용'의 마력이었다는 주장이다.

'9.11'이후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 소득의 양극화, 보수주의가 심화되면서 미국의 흡입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일종의 위기 보고서이다. 특히 세계에는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웰링톤(뉴질랜드) 암스테르담(네덜란드) 상하이(중국) 뭄바이(인도)가 창조적 인재들을 빠른 속도로 끌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 비율 39개국중 38위

그의 저서에서 눈길을 끄는 두 개의 표를 발견했다. 세계 45개국의 '창조적 계급' 현황을 비교한 표였다. '창조적 계급'은 국제노동기구(ILO)의 직업분류를 기초로 과학자, 엔지니어, 예술인, 건축가, 교수, 매니저 등 창조적 활동을 하는 직업을 묶은 것이다. 한국이 어디쯤 있나?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창조적 계급'이 전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9개국(분류가능 국가) 가운데 38번째로 낮았다. 멕시코가 유일하게 한국보다 낮았다.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도 위쪽이었다. 기술자(technician)를 포함하지 않을 경우 한국의 '창조적 계급' 비율은 10%에 못미친 반면 1,2위인 아일랜드와 벨기에는 30%가 넘었다. 미국은 25%에 약간 못미쳐 11위였다.

다행히 '창조적 계급'의 증가율(1995년 이후 증가율)은 1위 아일랜드에 이어 한국이 2위, 멕시코 3위, 이스라엘 4위 등이었다.

플로리다 교수의 분류방식에 의문이 남았지만 정확치 않다고 항변할 수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플로리다 교수는 핀란드 출신 교환학생들에게 "자녀들을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게 하고 싶으냐"고 물었으나 "노"라고 대답하자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외국 창조적 계급에게 "한국에서 자녀들을 자라고 교육받게 하고 싶으냐"고 물을 준비가 돼 있는가.

◇'관용' 없는 한국 사회, '창조 경영'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의 '관용(Tolerance)' 지수는 어느 정도인가. 나와 다른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의견과 행동을 얼마나 존중할 수 있는가. 조그만 흠집만 보여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처벌을 가하는 사회는 아닌가. 창의적 인재가 싹 틀 무렵 번번히 망가지고 실패를 피해가는 보신주의자만 득실거리게 하지는 않았는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해말부터 '창조 경영'을 화두로 꺼냈다. 이 회장은 "이제 물건만 잘 만든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기업의 사활을 좌우한다"고 했다. 그 창조적 아이디어는 다름아닌 창조적 인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회장이 올초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라고 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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