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리더 '변희봉' 선생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6.10.29 07:15

[영화속의 성공학]스물아홉번째 글..영화 '괴물'

1. 예전 인터넷에 떠돌던 유머 가운데 이런 게 있었다. 어느 문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귀족적인 요소와 성적인 면을 담아 글을 써보라고 과제를 냈다. 교수는 어느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을 보고 당황했다. 내용은 단 한 줄. '공주님이 임신했다.'

기가 막힌 교수님은 그 학생에게 SF적인 요소를 첨가해보라고 시켰다. 다시 받은 과제물은 역시 또 한 줄뿐이었다. '별나라 공주님이 임신했다.'

열이 받은 교수님. 이번엔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가미해 글을 쓰라고 시켰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론 슬슬 내용이 기대된다) 이번에도 내용은 한 줄. '별나라 공주님이 임신했다.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단단히 화가 난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요소까지 더하라고 시켰다. 다시 써온 과제물에 기가 막힌 교수님은 결국 'A'를 주고 말았다. '별나라 공주님이 임신했다. 오, 마이 갓!(Oh, my God!)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시작부터 '웬 시시껄렁한 유머'냐고 하시겠다. 그럴 이유가 있어서 소개했다. 일단 각설하자. 자, 이번 글에서 다뤄 볼 소재는 다름 아닌 영화 '괴물'이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괴물'은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관객을 동원했다. 관객 1300만명을 돌파했다.

그렇다면 영화 보는 것이 가능한 연령대에 속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정도는 봤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본 사람마다 '이러쿵 저러쿵' 감상평이 다양하다.

고명하신 평론가님들도 웬만한 분들은 다 한번씩 이 영화를 소재로 글을 쓰셨다. '가족 영화다', '반미(反美) 영화다', '권력비판 혹은 무정부주의적인 영화다' 등 견해가 분분하다. 그런데 기자에게는 이 영화가 훌륭한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다. 좀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다. 최고경영자(CEO) 취재와 성공학섹션 관리·운영이 기자의 주요한 임무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본 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기자도 순전히 기자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다.

물론 기자로선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풀어갈 이야기가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다고 뭐라 그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리 보험삼아 같은 맥락(?)의 유머 한 구절을 먼저 소개했다. 세상은 자신이 보는대로 보이는 법이다.

자, 이제부터 주인공 일가족의 가장인 변희봉 선생의 훌륭한 리더십에 대해 살펴보자.( 그냥 극중 이름보다는 잘 알려지고 편한 배우이름으로 간다)

2. 상사나 윗사람의 위치에 있는 분들은 한번 되돌아보자. 그동안 부하직원이나 후배가 잘못이나 실수를 저질렀을때 어떻게 반응했었나. 일단 열이 받으면 누가 있거나 말거나, 그 자리에서 고함지르고 호통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한 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신체구조나 초등학교 학력까지 의심하는 일도 흔하다. 또 잘못을 저지른 후배의 암울한 미래도 서슴없이 예언한다. 어제 마누라 혹은 남편과 싸워 발생한 스트레스를 독설과 폭언을 통해 모조리 쏟아낸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단 분들도 있겠다. 한번 표현해보겠다.

"도대체 X가리에 뭐가 들었니?"
"초등학교는 나왔냐? 학교 다닐때 뭘 배운 거냐"
"그 따위로 일을 하는데 너 도대체 뭐가 될래?"
"이런 것들 데리고 일을 하려니 돌아버리겠다."
"이걸 확 짤라버려"

에이, 이제 그만하자. 분위기 '싸∼'해진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상사에 대한 반발심부터 가지게 된다. 또 다른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굉장히 창피하며 모욕감을 느낀다. 다혈질인 경우라면 나이와 직급 불문하고 '욱'하고 들이받기도 한다. 소심한 경우라도 상사의 인격을 의심하며 '뒷담화'에 열중하게 된다. 원한만 사면서 도무지 해결되는 건 없다.

그러나 우리의 변희봉 선생을 보라. 큰 아들인 송강호가 손님 오징어 다리를 몰래 뜯어 먹었을 때도, 따로 조용히 불러 점잖게 직업윤리에 대해 가르친다. 아무리 한심한 아들일지라도 막 고함치고 야단치며 아들의 인격을 모욕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아들에게 생활인으로서 강한 책임감을 깨닫도록 해준다. 물론 이 멍청한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서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말이다.

또, 변희봉 선생은 잘나간 못났건 간에, 모든 가족들을 있는 그대로 감싼다. 또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한다. '역지사지'의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고 계셨던 거다. 둘째 아들 박해일이 엉뚱한 아이 손을 잡고 뛰었다고 자기 형을 질책할때, 변 선생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겠나며 송강호를 이해해준다.

또, 잃어버린 손녀를 찾으러 나간 긴박한 상황에서 큰 아들이 조는 것을 작은 아들이 비난하자, 못난 아들을 탓하기 전에 아들의 어린 시절을 생활고로 인해 잘 돌보지 못했던 자신부터 먼저 질책한다. 리더로서 이 얼마나 훌륭한 모습인가.

3. 제대로 된 리더가 되려면 인격에 더해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리더라면 우선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풍부한 네크워크를 갖고 있어야 한다. 변 선생을 보자. 정부는 엉뚱하게 변 선생 일가족으로 감염자로 판단해 격리시킨다. 이때 변 선생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 가족들을 모두 탈출시킨다. 그는 삼엄한(?) 정부의 감시망를 뚫어내고 탈출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변 선생의 리더로서 능력은 이 뿐만 아니다. 그는 보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덜 중요한 것들은 아낌없이 투자할 줄 아는 그런 분이었다. 또 큰 목표를 달성위해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했다.

모두들 아는 영화 줄거리 속에서 그 논거를 대보자. 정부만 믿고 있다간 괴물에게 잡혀간 손녀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손녀를 직접 찾아나서기 위해 매점을 제외한 전 재산을 털어 통제구역에 진입하기 위한 방역차량과 한강 지도와 괴물에 맞설 무기를 구입한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식들보다 앞장서 손녀를 찾아나선다. 아, 변 선생은 임기응변마저 뛰어나시다. 위조한 방역차로 통제구역에 들어갈 때,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에게 큰 아들 송강호가 '삥땅'친 저금통을 들이밀고 위기에서 탈출한다. 푼돈 마저도 유용하게 잘 사용하시는 이 유연함을 보라. 정말 배울만 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변 선생이 리더로서 위대한 점은 자신을 내던져서 가족 구성원인 세 자식들을 모두 개선시켰다는 점이다. 세르반테스는 "좋은 지휘관을 만날 때 병사들은 용감해진다"고 했다. 어떤 리더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격언도 전해진다. "사자가 이끄는 양의 군대는 양이 이끄는 사자의 군대보다 강하다."

큰 아들 송강호는 정말 한심하고 모자란 위인이었다.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딸에 대한 사랑 뿐, 생활력도 굳건한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변 선생은 자신의 목숨과 바꿔 못난 큰 아들에게 가장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물려주었다. 아버지의 처절한 죽음을 목격한 이후, 송강호는 제대로 된 가장으로 거듭났다.

둘째 아들 박해일은 자식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지만, 술만 퍼 먹는 실업자 신세에 매사에 불평불만만 늘어놓은 그런 위인이었다. 어설픈 운동권 출신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만 할 줄 아는 입만 살았던 한심한 인사. 그러나 아버지 죽음 이후, 위치추적을 통해 조카의 위치를 알아내는 개가를 이뤘고(흉계에 빠져 잡힐 뻔 했지만), 화염병을 제조해 괴물과도 당당히 맞섰다.

무력하면서도 부정적으로만 살아가던 인사가 세상과 당당하게 맞서게 된 것이다. 괴물 퇴치 이후, 박해일의 생활은 비록 묘사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그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이번엔 막내딸을 살펴보자. 양궁선수인 그녀는 심약한 마음때문에 번번히 결정적인 순간에서 실수해 금메달을 놓치고 만다. 그러나 아버지의 숭고한 죽음 이후, 괴물을 퇴치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한 화살을 날린다. 양궁선수로서도, 훌륭한 사회인으로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그려갈 그녀가 그려진다.

장황하게 이야기가 길었다. 사실 변 선생의 훌륭한 리더십은 훌륭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시인 조지 허버트는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스승보다도 낫다"고 했다. 훌륭한 아버지가 많아질수록 훌륭한 리더도 많아질 터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좀 더 좋은 곳이 될 테고. 김용화님의 시 '아버지는 힘이 세다'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할까 한다.

아버지는 힘이 세다.
세상 누구보다도 힘이 세다.
손수레에 연탄재를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길도 쉬지 않고 오른다.
꼭두새벽 어둠을 딛고 일어나
국방색 작업복에 노란 쪼끼를 입고
통장 아저씨를 만나도
반장 아줌마를 만나도
허리 굽혀 먼저 인사를 하고
이 세상 구석구석
못 쓰게 된 물건들을 주워 모아
세상 밖으로 끌어다 버린다.
나를 키워
힘센 사람 만들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가 끌고 가는 높다란
산 위에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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