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 2006.09.29 10:49
출산제한이 지상과제인 시절이 있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는 표어는 점잖은 편. "덮어놓고 낳다보면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원색적인 포스터로 인간본연의 종족번식 본능을 억제시키기도 했다.

표어에 그치지 않았다. 정관수술을 한 성인 남성에게는 예비군 훈련을 면제시켜 주고, 아파트 청약에도 우선권을 줬으니 말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출산제한은 저출산 풍조를 심화시켰고, 이는 급격한 인구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사회를 초래했다.

세월이 흘러 2006년.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다자녀 가구에게 아파트 청약 우선권을 주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시안적인 정책에 매달리다가 몇년 뒤에 호된 댓가를 치루는 사례를 적잖게 경험했다. 신용카드의 길거리 판매가 대표적이다. 일시적으로는 내수경기를 크게 진작시켰는지 모르지만 수백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 두고두고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분양권의 무한전매 허용도 마찬가지다. 건설경기를 살린다고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가야할 집을 자금력을 갖고 있는 투기세력에게 돌아가게 하는 바람에 주택의 독과점을 초래, 집값이 크게 뛰는 발미를 제공했다. 눈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아파트 분양원가공개를 놓고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판교-파주-은평으로 이어지는 고분양가 파동이 분양원가공개 논쟁을 촉발한 것이다. 지난 2003년 9월의 첫 논란이 의원입법으로, 2004년 봄에 불거진 원가공개 논쟁은 주택업체들의 분양가 담합행위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3차 논쟁은 잇딴 고분양가 책정이 발단이다.

특히 어제 MBC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의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전향적 입장`이 3차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1,2차 논란 당시 노 대통령은 "원가공개는 장사원리에 위배된다"며 반대를 분명히 했었다.


2년사이에 너무도 오른 집값과 분양가로 인한 부담 탓인가. 이번에는 노 대통령의 스탠스가 바뀌었다. 노 대통령은 원가공개 반대입장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제가 분양원가공개제를 반대할 수가 없네요. 왜냐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많은 시민사회에서 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고 답한 것이다.

분양원가공개가 `눈앞에 보이는` 고분양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은 어떤 게 있는 지에 대한 연구가 없어서다. 원가공개로 인해 주택공급이 급격히 위축되어 기존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분양가를 위로 밀어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분양이 잘 되지 않은 사업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또한 아파트 원가공개 사례가 자동차 가전 등 일반 소비재의 원가공개 요구로 이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
'보이지 않는 곳'을 잘 헤아리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앞선 정권들과 같이 성과를 뽐내고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원가공개를 통해 분양가를 낮추는 데에만 급급해 하면 안된다.

먼저 원가공개가 몇년 뒤 수요자 무주택서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 또한 개별기업과 건설산업, 더 나아가 경기 전반을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두루 헤아려야 할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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