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 X같이 빠르다

김영권 정보과학부장겸 특집기획부장 | 2006.06.15 12:58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변을 살피는 여유를 가져야

"난 말이야, 인생은 탭댄스라고 생각해. 생각이 많으면 박자를 놓치지."
 
이 광고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머리를 텅 비운 채 아무 생각없이 살라고 부추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첫째, 꽉 막히지 말고 리듬을 타면서 살아야 한다. 둘째,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세째, 힘빼고 유연하게 살아야 한다. 운동도 힘빼고 부드럽게 하는 사람이 고수다.
 
하지만 이 광고는 거침없이 빠른 속도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번개같은 초고속인터넷, `메가패스'를 자랑하는 광고 아닌가. 그 속도에 맞추려면 마음가는대로 그냥 리듬에 몸을 맞겨야지 이것저것 뻣뻣하게 따지면 안된다.
 
다른 초고속인터넷 회사의 광고는 한술 더 뜬다. "느린 인터넷 참지말고 신고하여 `엑스피드' 깔자." 광고 의도는 분명한데 더불어 부추기는 메시지는 `느린 것은 못참아'다.

못참으면 어떻게 할까. 답도 광고 안에 있다. 즉각 격분해서 컴퓨터를 날려 버린다(남자). 또는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여자). 날리거나 찢어 버리지 않으려면 얼른 더 빠른 것으로 바꾼다.
 
이 광고전에 가세한 또 한 선수는 더욱 가관이다. "진짜 X같이 느리네!" "X같이 느리다면 따져라!" 한동안 신문지상을 장식한 이 시리즈 광고가 요즘에는 시내버스에 붙어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 광고를 접한 누리꾼의 댓글도 하나 소개한다. "이 문구 보고 웃다가 쓰러질 뻔 했습니다. 제가 사장이라면 광고 카피를 써 낸 사람에게 따로 `포상'을 줬을 것 같습니다."
 
느리면 못참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습성이 `IT강국 코리아'을 만들었다고 한다. 분초를 다투는 살벌한 첨단 IT경쟁에서 굼뜨면 곤란하다.

하지만 빠르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다보니 세상이 정말 각박하다. 다들 마음이 바쁘고, 조급하다. 내가 급하니 다른 사람 사정이 급하다고 봐줄 여유가 없다. 누가 조금만 성가시게 해도 바로 욕이 나오고, 주먹이 오간다. 밀리면 당한다. 주춤하면 뒤진다. 양보하면 `곰바우'다.

모두들 속도에 중독되고, 소음에 귀가 막혔는지 아무 말이든 막 쏟아낸다. 주먹만한 활자로 `X같다'는 광고를 하고, 그걸보고 감탄하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X같이 빠르고, X같이 바쁘다.'

물론 초고속인터넷이야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그걸 앞세워 돈을 번다고 마음까지 거칠게 망동해선 안된다. 기술과 기계가 빨라진다고 자신의 생활과 성질까지 속도를 높이면 곤란하다.

일상이 바빠지면 결국 숨이 가쁘고, 피로는 쌓인다. 빠른 속도에 맞추느라 주변을 살필 경황이 없다. 시야도 좁아져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 모든 장면은 음미할 틈도 없이 스쳐간다.
 
와중에 세월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갔고, 고단한 나에게 남은 것은 없다. 엉뚱한 곳으로 달렸어도 돌이킬 수 없다. 분주하게 산게 알고보니 눈먼 닭처럼 제자리만 빙빙 돌다 만 것이라 해도 만회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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