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기획부동산과의 하루 체험

머니투데이 방형국 건설부동산부장 | 2006.05.12 12:11
꽤 오랜 전 일이다. 기자 신분을 속이고 기획부동산을 따라 현장답사를 갔었다. 기획부동산이 제공한 벤츠 승용차 안에는 필자 외에 `사모님` 두분이 있었다.

일행은 기획부동산 직원의 인솔에 따라 해양엑스포를 유치하던 전남 여수로 향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도 없던 시절, 몇 시간을 달려서 여수에 도착했다.

시에서 벗어나 어느 마을로 가는데 직원이 지도를 들고 길을 헤맨다. 마침 커다란 나무옆에서 그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서넛이 장기를 두며 쉬고 있다. 길을 묻는다. 그들은 어눌한 말투로 길을 가르쳐 주고는 "요즘 우리 마을에 왠 삐까뻔쩍하는 차들이 들락날락한디야…"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이 말이 필자는 물론 사모님들 귀에 확 들어왔다. 귀를 땡하고 때리는 느낌. "엑스포만 유치하면 수십배 뜁니다"라는 업자의 말보다 가슴을 더 파고 든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데 일단의 고급 차량들이 빠져 나온다. "이자들도 이 곳에 땅을 사기 위해 현장답습을 왔구나. 이곳에 뭔가 있기는 있구나"하는 확신이 다시 든다. 마을 입구에는 `祝 엑스포 유치` 또는 `祝 OOO도로 확정`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요란하게 걸려있었다.

중개업소를 들렀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과 주민들이 뒤섞여 땅값이나, 개발계획 등으로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 뭐가 있어도 `단단히` 있구나 하고 3차 확신을 갖는다. 마을을 둘러보고 떠나려는데 또 그때 고급 차량 행렬이 마을로 들어온다. 이제 이곳에다 남보다 먼저 땅을 사놔야겠구나 하는 조급증마저 든다….


다 사기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나 연극을 본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진행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기자 입장에서도 깜빡하면 속을 정도로 치밀한 연기다. 나무 밑에서 쉬며 장기두던 중년의 남자들은 기획부동산이 미리 심어놓은 `바람잡이`. "요즘 우리 마을에 왠 삐까뻔쩍하는 차들이 들락날락한디야…"라는 말은 우리에게 들으라고 한 것이다.

기획사 직원이 지도를 들고 길을 헤맨 것도 연기였다. 마을 어귀에서 오가며 만난 차량역시 치밀하게 짜여진 연극의 각본에 따라 연이어 마추진 것이다. 사모님이 또다른 사모님을 속이는데 연이어 이용된 것이다.

각종 현수막은 물론 뗐다 붙였다 하는 것이고, 잠시 빌린 중개업소에 북쩍거리던 사람들역시 동원된 것이다. 마을주민은 영문도 모른 채 "우리 마을이 좋아져서 땅값이 오르나 보다"하며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동행한 사모님 두분은 각각 6000만원과 1억3000만원을 들여 그곳에 땅을 샀고, 해양엑스포 유치는 아직도 요원하다. 언제 개발될지 모를 땅을 헐값에 사들여 `칼질`한 다음 투자자들을 현혹해 비싼 값에 팔아넘기고 회사문을 닫아버리는 전형적인 수법이 동원된 것이다.

여수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 직원이 별안간 소리를 지른다. "저 하늘을 보세요. 구름이 용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계약하시면 운수대통하실 겁니다!" 용의 모습이었는지 모르지만 직원의 말에 따라 구름을 보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사모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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