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질은 무겁지만, 뉘우치고 돈도 냈으니"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 2006.02.21 18:23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판결1>"죄질은 불량하다 할 것이나...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0000원을 공탁한 점을 참작..."

법원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를 이런 판결과 함께 다른 어떤 재발방지 조치도 없이 풀어줬다. 급기야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여자아이를 추행하려다 살해했다. 아이의 주검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앞서의 법원 판결을 한없이 원망한다.

언론도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이 인면수심의 범죄자를 풀어주는 사이에 어린 소녀들은 공포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C일보)고 격하게 분노한다. "더이상 흉악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해 관대해서는 안된다"(J일보)며 사법부에 추상같은 판결을 촉구한다.

아무리 판사가 "판결로만 말한다"고 해도, '법의 재량권'내에서 판결했다 하더라도 그같은 판결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국민의 억장을 무너지게 한데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게 언론이다. 여러 나라에서 메간법과 같은 법률이 만들어지고 사법부의 단죄가 날카로워지게 된 출발점도 '여론의 압력'이었다.

<판결2> "죄질이 무겁지만..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고려....전액을 반환한 점 등을 감안..."

10여일전 법원은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피의자 14명 전원에게 이런 판결문을 들려서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여론은 역시 분노했다. 이용훈대법원장도 "200억, 300억원씩 횡령한 피고인들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면 국민이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질타했다.

앞서 인용한 언론들은, 이때는 달랐다. 법관이 여론의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앞섰다. "국민의 90%가 그렇게 생각해도, 법관은 양심에 따라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법조인의 발언을 인용하고 나섰다.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코드 인사'로 임명된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여론을 의식하면서 재판을 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어 파문이 일고 있다"는 진단이다.


언론이 해야 할 '밥 값'

기업인과 비인간적 범죄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자는게 아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이 어떤 경우에도 통하는 금과옥조 일수 없으며, 언론도 이를 인정하지 않아왔음을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으로 대표되는 사회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뜻을 전달함으로써 압력을 가하는게 '제 4부' 언론의 기능이자 의무이다.
인면수심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에 언성을 높이는게 언론의 정당한 임무이듯, 부도덕한 기업인이 수백억원의 돈을 빼돌리고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데 대한 국민의 박탈감을 전달하고 이를 사법체계와 판결에 반영되게 하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할 '밥값'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판결로 말한다'며 권위의 그늘에 안주하려는 것은 자연스런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 봐 줄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언론이, 대법원장이 그같은 구습에서 벗어나 국민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조직에 일갈한것을 비난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존재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인민재판, 국민재판' 조어 속에 숨은 뜻은?

권력과 금력의 그늘 아래서 스스로 성역을 쌓아왔던 사법부와 이를 방관했던 언론은 일찌기 '유전무죄'라는 흉악범의 외침을 명언으로 격상시켰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법살인'이라는 섬

베스트 클릭

  1. 1 선우은숙 "면목 없다" 방송 은퇴 언급…'이혼' 유영재가 남긴 상처
  2. 2 "이선균 수갑" 예언 후 사망한 무속인…"김호중 구설수" 또 맞췄다
  3. 3 [영상] 가슴에 손 '확' 성추행당하는 엄마…지켜본 딸은 울었다
  4. 4 [단독] 19조 '리튬 노다지' 찾았다…한국, 카자흐 채굴 우선권 유력
  5. 5 1년에 새끼 460마리 낳는 '침입자'…독도 헤엄쳐와 득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