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가진 게 너무 많다

김영권 정보과학부장겸 특집기획부장 | 2005.11.17 12:04

Less is More! 중요한 것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

벼르고 벼르던 옷장을 뒤집었다. 옷이 너무 많아 무슨 옷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 먹는다. 최근 1년간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은 모두 솎아내기로 했다. 그래도 주저주저하며 빼낸 옷이 한 짐을 넘는다.
 
내친 김에 냉장고도 열어본다. 먹을 게 차고 넘친다. 냉동실에 있는 생선은 어느 명절 때 넣어둔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만두피에는 유통일자가 2002년으로 찍혀 있다. 냉장실에도 버릴 게 수두룩하다.

솔직히 `이건 먹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게 한두개가 아니다. 가게에서 살 때는 유통일자가 하루만 지났어도 분개하면서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찜찜해서 버린 음식이 쓰레기 봉투를 다 채울 정도다. 이러면 벌받는데….
 
작심하고 신발장도 뒤집는다. 신지도 않은 채 모셔둔 신발들이 가득하다. 낡은 것들만 골라서 버려도 짐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 남긴 신발들도 대개는 신발장만 지키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버리기도 힘들어서 손을 놓는다. 아무래도 나는 가진 게 너무 많다. 책장에는 책이 넘친다. TV 볼 시간은 있어도 책 읽을 시간은 없는데 책 만큼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 있다. 결국은 다시 들춰 보지도 않을 책들을 꾸역꾸역 끌어안고 산다.

소파 침대 책상 걸상 식탁 탁자 수납장 경대…. 가구도 없는 게 없다. 안방이며 거실이며 큰 공간을 다 차지한 가구들을 피해 다니다 보면 누가 주인인지 헷갈린다.

 
피아노는 몇년째 울림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위에는 먼지 탄 봉제인형들이 `동물농장'을 이루고 있다.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는 훨씬 더 많다. 연필, 볼펜, 지우개, 손목시계, 열쇠고리, 동전, 쓰지 않는 가방, 망가진 장난감, 빈 화분, 카세트 테이프, 약봉지 등등 끝이 없다. 부엌살림은 매일 잔치를 치러도 될 정도다.
 
이렇게 가진 게 많아도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 늘 무언가 부족하다. 하긴 강남 사람이 더 부자라고 하지만 더 행복하게 산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도 부족한 게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또 열심히 사들이고, 집안 곳곳에 쟁여 놓는다.

그러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고 벌어들인다. 더 좋은 차와 더 큰 집은 필생의 목표다. 이것까지 사들여야 나는 행복할 것 같다. 경제기자를 하다보니 '이젠 소비가 미덕'이라며 다른 사람들도 끌어들인다. 지구를 망치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함정으로 유인한다.
 
그러나 옷장과 냉장고와 신발장을 뒤집어 실컷 버리고 나니 채우는 것보다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남은 옷이 옷답고, 남은 신발이 신발답고, 남은 음식이 먹음직스럽다. 빈 공간이 더 충만한 느낌이다.

Less is More! 이른바 `한계효용'이 높아진 것이다. 버리고 비울 수록 남은 것들이 소중해진다. 역시 중요한 것은 차지하는게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번잡함을 덜고 단순화할수록 그 가치가 드러난다.

다이어트는 체중을 줄이는데만 필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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