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5.10.30 09:59

[영화속의 성공학]열 아홉번째 글..'라쇼몽'

ㅇ…대학시절 한 때 영화에 취미를 붙인 적이 있었다. 마음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문화단체에서 하는 영화제에 열심히 쫓아다녔다. 자주 찾아가던 '시네마테크'도 있었다.

시네마테크에선 국내에서 개봉이 안 된 예술영화를 보여줬다. 하지만 필름이 아니라 원어 영화를 그대로 복사한 비디오테이프였다.

그 조악한 테이프를 프로젝트 영사기를 통해 봐야 했던지라 늘 화면엔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도 그렇게 봤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 훌륭하게 번역된 자막이 찍힌 비교적 양호한 화질의 비디오를 구해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조악한 화질에 인쇄체라고 보기 힘든 영어자막이 찍힌 화면이었다. 그래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영화의 철학적 힘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ㅇ…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사회에 대해 "폭력과 위선과 이기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영화는 그런 인간사회의 삐뚤어진 이면을 파헤친다. "이 영화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영화는 딱부러진 결론을 보여주진 않는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세계가 알아주는 거장이다. 대부분의 인생사를 단정지어 결론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도 모를리가 없다. 라쇼몽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같은 사실이라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 이런 전개형식은 나중에 많은 영화들이 따라한다. 이 영화가 고전이라 불리는 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분명한 건 산적이 사무라이의 아내를 범했고 사무라이가 죽었다는 사실 뿐이다. 영화는 이 '살인과 강간'(?)사건의 재판에서 벌어지는 각 당사자들의 진술에 관한 이야기다

ㅇ…산적은 자신이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순순히 시인한다. 하지만 사무라이의 아내는 자신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며 그녀의 요구에 따라 정당하고 치열한 결투끝에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무라이 아내의 주장은 또 다르다.

산적에게 겁탈당한 후 남편에게 다시 갔으나, 남편의 차가운 눈길을 견디지 못해 죽으려 했으나 죽지도 못했다고 오열한다. 대신 남편의 죽음에 대해선 설명이 그리 명확치 않다. 그런데 무당을 통해 원혼으로 나타난 사무라이의 말은 또 다르다. 아내가 산적에게 자신을 죽이고 함께 달아나자고 제의했다는 것.

산적은 그런 아내에게 정이 떨어져 포박했던 사무라이를 풀어줬고 그 와중에 아내는 도망쳤으며, 아내의 태도에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느껴 사무라이는 자결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누구의 말이 맞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그런데 사건엔 목격자인 나무꾼이 있었다.

나무꾼이 본 상황은 이랬다. 아내는 사무라이와 산적에게 둘이 결투를 벌여 이긴 사람이 자신을 차지하라고 제의했다. 사무라이는 아내가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거절하지만 우여곡절끝에 둘은 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겁에 질려 막싸움을 벌이다 우연히 사무라이가 죽게 됐다. 그렇다면 목격자 나무꾼의 진술은 과연 객관적인 진실일까.

(그래도 혹시 이 글을 보고 영화를 보겠다고 찾으실 분이 있을지도 몰라 나무꾼의 이야기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여기선 생략한다. 또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던져주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서 해답은 관객의 몫이다.)


ㅇ…인간이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지기 힘들다. 모든 사실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아니면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그렇게 이기적인 존재다. 그래서 많은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진실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그렇게도 애를 썼나보다.

또 우리는 세상 일에 대해 '장님 코끼리 만지 듯' 알고 있으면서 마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순전히 자기의 필요에 따라,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으로 세상과 세상 속 사람들을 재단해 버린다.

최근 논란인 '강정구 교수 사건'도 본질에선 라쇼몽의 이야기와 별 반 다를 바 없다. 한쪽에선 '안보와 국가 정체성'을 다른 한 쪽에선 '인권과 다양성'을 논하지만, 그 이면엔 여러 정치적 속내와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이 끼여있음을 짐작키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야, 검찰 뿐 아니라 문제의 발단이 된 강정구 교수까지 모두 자신의 목적과 잣대에다 이 세상을 제 멋대로 끼워 맞추고 있다. 전에도 이 코너에서 인용한 바 있는 카를 포퍼의 관점에 따르면 강정구 사건에 관한 태도에서 여,야,검찰과 강정구 교수 본인 모두 '열린 사회의 적'들이다.

사건의 각 당사자들은 포퍼가 '열린 사회의 적'들로 규정한 세가지 대상-전체 집단에서 한 가지 정도는 잃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주장, 개인은 전체적인 사회적 흐름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견해, 당면한 현실보다는 이상만을 추구하는 생각-들 가운데 어느 하나 이상에는 해당되기 때문이다.

ㅇ…자, 정치적인 이야기는 이쯤에서 관두고 다시 본연의 결론으로 돌아가자. (물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이 우리의 행복이나 성공과 완전히 무관하다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다 쓸데없고 부질없다 생각한다)

개인의 인격적인 완성을 위해서도,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도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이기심'이 아닐까 싶다. 오직 '나만을 위한' 마음이라면 어떤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어떤 일이든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제대로 잘 해내는 것도 당연히 어려워진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이기적인 사람은 남을 위할 줄도 모를 뿐더러, 자기 자신도 위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잘못된 이기심의 본질은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라기 보다는 남들이 잘 되는 게 싫은 '뺄셈'의 마음이다. 시기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서 덜어낸다고 해서 내게로 보태지는 것은 결코 아닌데 말이다.

기왕 한번 사는 인생이라면, 뭐든 남기는 쪽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어떨까.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행하며 남기는 거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참된 이기심'(?)이라면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오히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도 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다른 이들도 사랑하게 될테니까.

정말 제대로 자신과의 사랑에 빠져보자. 남들이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길 바라는 부질없는 이기심을 저 멀리 던져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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