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휴가를 떠나자

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 | 2005.08.01 13:27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었다. 고속도로는 막히고 공항은 붐빈다. 금년에도 역시 휴가를 반납하고 미래사업을 구상하겠다는 CEO들이 있다. 비즈니스 관련 서적들은 앞으로 10여년 먹고 살 수 있는 사업부문을 찾아내라고 CEO들을 몰아 부치고 있다.
휴가철이 끝나면 뭔가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사업 구상을 발표해야만 하는 CEO들은 머리가 무겁다. 정부가 유망 미래산업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신사업이라면 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매년 가는 휴가이지만 직원들도 고민이 많다. 남들은 잘 오지 않는 한적하고 싸고 좋은 휴가지를 찾아보겠다고 인터넷을 뒤져 보지만 막상 좋다는 데를 가보면 어떻게들 알았는지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요즘처럼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된 세상에서는 내가 아는 정보는 남들도 안다.

그런가하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정보를 무조건 믿었다가 곤란을 겪는 경우도 많다. 막상 가보니 실망 그 자체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있지도 않은 펜션에 예약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날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마진이 박해지고 있는 금융부문 CEO들은 더욱 고민이 많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사업부문을 찾아내라고 사방에서 다그치는데 새로운 상품을 스스로 개발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금융상품은 누구나 쉽게 복제할 수 있어 신상품 개발 유인도 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금융선진국에서 유행했던 사업부문에 뛰어 드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 한때 전자금융이 금융산업을 먹여 살릴 사업부문으로 등극하기도 했고 신용카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요즘은 AM, PB, WM 등 영어 알파벳 두자로 된 사업부문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무작정 유행 따라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도 겁이 난다. 신용카드에 크게 당한 탓도 있지만 이웃나라 일본에서 세계적인 은행조차도 비윤리적인 PB 업무 수행과 관련해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 PB의 위험성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다. PB는 무위험 고수익 사업이 아니라 한 명의 딜러가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는 파생상품 투자만큼 위험한 사업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휴가를 반납한 금융회사 CEO들이 혼자서 하는 사업구상의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인허가 형태의 진입장벽이 거의 무의미해진 오늘날 남들이 뛰어들지 못하는 새로운 사업영역은 이제 없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사업영역 구상이 무의미하다면 금융회사 CEO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어딘가로 떠나고 있는 직원들이다. 금융회사 직원들의 머리, 곧 생각하는 능력과 업무태도가 자산이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사업영역을 찾아내고 이왕에 하던 사업부문의 수익성을 높이고 그 성과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받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금융회사 CEO의 사업구상이 되어야 한다. 몇십 년 먹고 살 길은 어딘가 모르는 곳에 있지 않고 금융회사 내부에 있다.

이제 금융회사 직원들은 새로운 휴가지를 찾아 어디로 떠날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휴가기간 동안 어떻게 무엇을 하며 즐길 것인가를 고민하자. 그렇게 생각하면 텅 빈 도심이 훌륭한 휴가지일 수도 있다.

CEO들은 스스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소설책 몇 권을 들고 부담 없이 휴가를 떠나자. 그리고 휴가지에서 다양한 계층의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그들이 사는 얘기를 들어보자. 그러면 하반기 회사경영을 위한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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