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은 공짜?"… CEO처럼 생각하라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 2005.06.20 17:20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지난 주말 전방에서 8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우리 곁에서 앗아간 건 적이 아닌 동료의 총탄과 수류탄이었다.

해마다 우리 군대에서 목숨을 잃는 젊은이는 300~400명에 달한다. 매년 입대자가 30만명 수준이라니 입대자 대비 0.1%가 목숨을 잃는 것이다. 0.1%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은 설마 없을 것이다.

지구상의 가장 치열한 전장인 이라크 전쟁에서 개전후 2년반동안 목숨을 잃은 미군이 1600여명, 한해로 치면 700명 수준이라면, 총성없는 우리의 병영이 실제로는 얼마나 살벌한 전장터인지 알수 있다.

◇ '기강해이' '안보구멍'으론 해결못해

사고가 나면 늘 그렇듯 '기강해이'가 거론된다.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강'은 군대의 존재를 위한 기본요건일뿐 문제 해결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혹자는 '요즘 군대가 개판이다, 신세대의 나약한 심성이 이러런 걸 만들었다'고 한다. 일부는 맞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세대론'은 (거의 일상화돼) 외부의 주목을 끌지도 못한 병영내 희생이 예전에 지금보다 많았던 걸 설명해주지 못한다.

더구나 대통령의 안보불감증이 이런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는 발빠른 정치공세는 문제해결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단세포적인 발상이다.

물론 총기난사는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범죄라고 칠수도 있다. 하지만 총기난사가 아니라고 해도, 매년 대대병력이 자살을 포함한 각종 사건으로 사망하고, 여단병력이 부상이나 질병으로 전투력을 상실하는 현실은 현재의 군대 시스템으로서는 더 이상 해결한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 병사의 경제력 상실, 계산할수 없는 비용

상실되는 건 전투력만이 아니다.

사망자는 물론이거니와 몸과 마음의 병을 들어 제대하는 청년들은 경제력을 상실하고, 우리사회의 피부양자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출산율이 저하돼 사회구조가 노령화되고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한다는 탄식의 한편에서 이처럼 심각한 인적자원의 손실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우리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계산이야 힘들지만 아이 한명을 고등학교 까지 키워내려면 교육비만 따져서 3000만원, 대학교 학비도 또 그정도 들것이고, 학원비 등등 따지면 7000만~8000만원, 입히고 재우고 하는것 따지면 1억원이야 가볍게 넘을 것이다.
이번에 사망한 8명의 장병은 모두 대졸 혹은 대학 재학중 입대한 우리 사회 최고의 자원이다.

매년 우리는 군대 사고를 통해 수십년간 투자해온 수천억원의 비용을 날리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5명은 외아들이라니 전력을 다해 우리부모들은 모든 걸 쏟아부었을 것이고, 부모들이 들였을 정성과 헌신은 눈에 보이는 비용과는 비할수도 없다.

지금까지 투자된 것만 따졌을때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난주말 잃어버린 8명의 청년 속에는 '수십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영웅', '제2의 황우석, 제3 빌 게이츠'가 포함돼 있었을지 모른다. 청년들이 앞으로 할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까지 따지면 군대사고는 돈으로 계산할수 없는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 '병졸=공짜' 인식 바꿔야

'병졸은 거의 공짜로 무한정 갖다 쓸수 있다'는 원시시대적부터 내려오는 군 운용방식으론 21세기 군대를 이끌수 없다. 21세기까지 올것도 없다. 수백만 수천만 백성을 군역에 동원해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그때문에 오래가지 못한 진시황제에서부터 공짜 병졸 부리다가 망한 군주는 셀수 없다.

"군인 셋에, 사람 두명"이라는 우스개처럼 우리의 군인들이 진시황때 만리장성노역에 동원된 백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되새겨볼 문제다.

분단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다지만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 막중한 서비스에 비해 우리 군인들이 받는 처우는 '월급 3만원'이 상징한다.

물론 상병 기준 3만5800원인 사병월급을 올해부터 6만원으로 무려 67.6%나 올리고, 군대에 PC를 놔주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그런 '개선'도 없는것보단 못하다.

하지만 우리의 병사를 수조원의 '잠재가치'를 가진 자원으로 보고 그 귀중한 자원을 귀하게 대접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제2, 제3의 '연천 김일병'이 나오는걸 막을 수 없다.

올 한해 사병에 들어가는 인건비는 3900억원. 국방예산 20조8000억원의 1.87%에 불과하다. 병력의 77%를 차지하고 있는 사병들의 월급봉투에 들어가는 돈은 전체인건비의 6.6%에 불과하다.

국방위 임종인 의원은 "1950년 이병 1000원, 대장 3만원으로 30배에 불과했던 급여 차이는 2004년도에는 이병 2만9900원, 대장 834만5200원(수당 포함)으로 무려 279배로 벌어졌다"고 개탄한다. 군대가 특수한 집단이라서 대우가 낮은게 아니라 '사병=공짜'라는 심리가 우리의 아들 딸, 형제 자매, 형님 누님을 점점 더 상대적 비참함으로 몰고 간 것이다.

◇ '갈 만한 군대' 만드는 통수권자의 결단 필요할때

30명씩이 한 침상에서 몸을 부딪히며 자고, 집에서 돈 타다 쓰고, 사생활이라고는 전혀 없는 비인간적인 상황들을 바꾸는 그런 일들을 하는데는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치르고 있는 희생과 기회비용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갈 만한 군대'를 만들어줌으로써 우리 경제와 사회가 돌려받을 효용을 생각하면 과연 그게 그렇게 큰 돈일까.

자신이 중요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태도가 달라진다.제공하는 서비스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대우와 사회적 인식은 사소한 불만도 폭발하게 만든다.

착취에 가까운 싼 임금으로는 최고급 제품과 서비스를 기대할 수없다는건 종업원을 이끄는 경영인만이 알아야 할 일은 아니다.

첨단장비도입을 통한 공장자동화와 인력절감이 임금과 생산성을 함께 올리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정예 종업원의 경쟁력이 효율성의 원천이라는건 군대라고 다를바없다.

종업원과 관리임원의 임금차이가 300배 벌어지는 조직의 폐해는 엔론같은 미국 기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가장 중요한 자원집단의 하나인 군인들을 노예가 아닌 종업원으로 대접하는 CEO식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군 최고통수권자가 결단을 내리고, 군인들의 부모, 형제, 아우들이 나서야 할 때가 이제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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