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아버지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5.06.17 18:59

[영화속의 성공학]열 세번째 글..'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 1.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작아 보인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그것처럼 섬세하거나, 포근하지 않아서다. 아버지의 사랑은 마치 공기와도 같다. 평소엔 잘 느껴지지 않다가도 한 순간이라도 멀어지는 순간, 바로 알게 그런 사랑이다.

아버지는 가족의 지붕이고 기둥이고 울타리다. 그 속에서 어머니가 아이들과 도란도란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묵묵히 지켜보며 외부의 비바람을 견뎌 낸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역할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역할에만 머문단 얘기는 결코 아니다.

예전 강연에서 들은 박동규 교수님의 얘기가 생각난다. 박 교수는 시인 박목월 님의 장남이다. 시인의 아들에게 가난은 필연이었다. 박 교수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였나 그랬다. 늘 헌 옷을 입고 다니던 그는 반들반들한 새 교복이 너무나 입고 싶었다. 하지만 중고 교복밖엔 입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할 고생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삯바느질 등 온갖 고생을 묵묵히 견디셨다. 사춘기 시절 반항기가 박 교수에게도 왜 없었을까. 뻔한 형편인데도 아버지에게 새 교복을 사달라며 몽니를 부렸단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출판사에 나가셨다 퇴근길에 시인은 박 교수에게 뭔가를 툭 내던지셨다. 새 교복이었다. 어린 박 교수는 정말 신났다. 새 옷을 입고 맘껏 뽐내며 학교 갈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런 와중에 그의 눈에도 아버지의 파랗게 물든 손가락이 보였다.

아들은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새 교복을 마련해주기 위해 몇날 며칠 밤을 새며 외부 기고를 의뢰받아 글을 썼다. 시인의 자존심으로 다른 글을 웬만해선 잘 쓰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였건만 아들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어, 밤을 새며 손가락 끝이 잉크에 물들어 파래지도록 글을 썼다.

박동규 교수님은 시인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다.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경제적 능력은 덜했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준 사랑, 아버지가 준 재능, 아버지가 일깨워 준 인생의 참된 의미를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가 만드는 울타리는 돈으로 만드는 것도, 지위나 명예로 만드는 것도 분명 아니었다. 그건 사랑으로 만든다.

# 2.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는 아버지의 고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에피소드 '4,5,6'이 먼저 나왔고 '1,2,3'편이 나중에 만들어졌으므로 줄거리는 이미 다 공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중 이번에 개봉한 3탄은 루크의 아버지인 아나킨이 다쓰베이더로 변하기까지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다이의 가장 촉망받는 기사 아나킨과 사랑에 빠진 여왕 아르밀다는 아이까지 임신한다. 그러나 제다이의 기사에겐 금지된 사랑이었다. 거기에다 아나킨은 아르밀다가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내다보고 괴로워한다. 어떻게든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의 자식들을 살리고픈 마음 뿐이다.

그런 그에게 제다이의 규칙은 냉엄하다. 아나킨의 상담을 받은 마스터 요다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충고밖엔 하지 않는다. 스승인 오비원 캐노비도 남몰래 이 연인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줄 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 아나킨에게 악의 군주인 팰퍼틴 의장(시스 황제)은 어둠의 힘을 이용해 사랑하는 이들을 살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의장의 제안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도,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어둠의 힘을 이용한 권력에 대한 탐욕일 뿐이었다. 결국 그 어둠의 유혹에 넘어간 아나킨은 그 자신도, 사랑하는 여인도, 자식들도 모두 불행하게 만들고야 만다. 악의 편에 선 아나킨은 아르밀다에게 더 이상 기쁨이 되지 못한다.


아나킨은 태어날 아이에게 강한 아버지이고자 했고, 그의 연인을 지켜줄 강한 남자가 되고자 했다. 따라서 당연히 현실적인 힘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같은 힘이라도 순수하지 못한 악의 힘은 원래의 목적만을 달성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나킨은 사랑이 넘치는 강한 아버지와 남편이 아니라, 단순한 권력의 화신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려면 현실적인 힘, 대표적으로 돈 같은 것이 필요하다. 돈은 기왕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돈을 버는 과정도 중요하다. 부정하게 벌어도, 남을 해하면서 벌어도 많이 벌어 부자만 되면 다일까. 그렇게 해서 돈 많은 아버지가 되기만 되면 아내와 자식들이 마냥 행복해할까.

하지만 세상은 공평정대한 곳이다. 신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정직하게 번 돈은 원래 목적만을 위해 그렇게 쓰인다. 하지만 단순히 부 자체와 권력을 탐하기 위해 부정하게 번 돈은 엉뚱한 목적에 쓰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정작 소중한 사랑과 행복을 파먹어 들어간다.

가정을, 자식과 아내를 지켜내는 울타리는 돈이 아니다. 돈은 그 울타리를 쌓는 재료의 하나일 뿐. 제대로 된 울타리를 올리고 단단히 엮어내는 건 아버지의 당당한 정신세계와 노력,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 싶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장 명대사는 바로 다쓰베이더가 아들 루크와 결투끝에 루크의 팔 하나를 자르고 나서 내뱉는 말이다. "나는 너의 아버지다." 하지만 그 말엔 회한과 안타까움 같은 것이 진하게 뭍어 있었다. 사랑과 자부심으로 내 아이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할텐데. "아버지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라고 말이다.

#3.

스타워드 에피소드를 보다보면 또 다른 고민이 발생한다. 선과 정의를 표방하는 제다이 기사단도, 강한 힘을 통한 통일을 꾀하는 황제도 모두 아나킨이라는 개인의 행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개인의 행복이라는 문제는 권력 같은 문제 뿐 아니라, '선'이나 '정의'같은 집단적 가치와도 부합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 문제와 연관해 카를 R. 포퍼는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역설한 바 있다. 어떤 사회나 집단 전체는 하나의 이론적 구성물일 뿐, 개개인을 무시한 사회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제다이와 황제는 엄연한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제다이를 보자. 그들도 역시 선이나 정의 같은 공동선을 우선시 할 뿐, 제다이 기사단 구성원 개인의 자유나 행복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게 제다이의 구성원들은 철저히 자신을 버린다. 공동선을 위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희생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도고 볼 수 있다.

반면 황제의 경우는 사회전체를 역사적 물결이나 운명 등으로 묶어 놓고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억누르려는 전체주의의 화신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서 권력을 누리려 한다. 우주의 중심을 자신에 두고, 다른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우주를 움직이려 한다. 포퍼의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열린 사회의 적이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지난 열두번째 글 '계백장군과 거시기'에서 썼던 주제로 흘러간다. 잘 난 사람들을 부러워 하지 말자. 잘났다고 다 행복해지는 게 아니니. 아무래도 평범한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난 기사는 성공학 섹션 하단에 있는 '영화속의 성공학' 배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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