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B의 자신감 '땅, 땅'

봉준호 (외부필자) | 2005.04.06 13:45

봉준호의 살 맛 나는 부동산

1990년 봄. H건설에 아주 재미있는 직원 B가 들어왔다. 개그맨인지 직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유쾌, 상쾌, 명쾌한 젊은이였다. 키 180㎝에 독특한 구두, 둥근 테 안경… 그 젊은이가 주는 씩씩하고 우렁찬 특이함은 조금은 찌들고 경직된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보태 주었다.

B가 출근하고 며칠 후에 부서 회식 겸 신입사원 환영회가 준비됐다. 1차는 고깃집에서 소주잔을 돌리다가, 여직원들을 보내고 남자 직원들끼리 2차로 까페에 가서 오징어와 맥주를 시켰는데, 신입사원 B가 말을 70% 이상이나 하고, 술값도 본인이 계산했다. 40대, 50대의 차장, 부장은 그저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보수적이고 직급에 대한 권위가 대단한 대기업 회식 자리에서 일어난 일종의 쿠테타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윗분들과 아랫사람들을 다 보낸 후에 B를 데리고 무교동 쪽으로 걸어갔다. 자정이 넘고,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20미터 쯤 앞에 포장마차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자네 군대는 갔다 왔나?”
“네, 방위 갔다 왔습니다.”
“형제는?”
“누님이 한 분 계신데 결혼하셨습니다.”

포장마차 나무 의자에서 오뎅 국물과 소주 1병을 시켰다.

“재수는 해 봤나?”
“삼수 했습니다.”
“너 원래 서울 사람이냐?”
“ZZZ...”

대답 대신 포장마차 비닐 테이블 위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포장마차에서 일어나 안국화재빌딩 옆 자판기에서 담배 두 갑을 뽑았다. 빨간색 “Marlboro”였다.

“이 녀석 배짱이 좋은 거야? 아니면 뭘 모르는 놈이야?”

B의 부친은 서울 근교에 아주 큰 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B가 땅을 상속 받았다. 상속 절차를 거치면서 그 땅 가격을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라이프 스타일을 바꿨다고 했다. 모든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 되었다. 땅은 B가 행복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며 프라이드였다. 땅 값은 해마다 오르고… 심심치 않게 땅을 팔라는 전화가 오고… 땅 생각하며 월급 받아 펑펑 써대고… 회사에서 당장은 인기도 좋고… 회사 생활 하면서 남의 눈치 안 보고… 할 말 다 할 수 있고… 잘난 척 할 수도 있고… 여직원들은 호감을 보이고…

몇 달 후,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속내를 터 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된 나는 B와 함께 B의 땅을 보러 갔다. 정말 탐스럽고 전망 좋은 나대지였다. 이쪽 저쪽을 30분 정도 둘러본 후에 땅 중간 풀섶에 B와 함께 걸터앉았다. B가 나에게 물어왔다.

“이 땅을 뭐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이 땅 지목이 뭐냐? 필지는 몇 필지냐?”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푹 썩혀라. 그리고 땅 가지고 있다고 떠들지도 마라. 가만 있으면 너 재벌 될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얼마 후에 B는 나를 엄청 괴롭히더니, 그 땅에 자동차 학원을 임대 놓아서 상당히 많은 금액의 임대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내가 자동차 학원을 임대 놓도록 권유한 것은 창고나 자동차 학원 등은 2단계 개발 계획이 섰을 때, 명도 및 철거가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1년쯤 지난 후, 주택사업부 K부장이 나를 불렀다.

“봉과장, B가 자동차학원 2만평 가지고 있다는데 그거 사실이야?”
“그 말씀 어디서 들으셨어요?”
“경리부 H양이 B가 땅 가진 것을 알고 있더라구. 그리고, 그 녀석 하는 짓이 돈 푼이나 있게 노니까 뭐 좀 있겠구나 싶었어. 날 잡아서 술집 데려가서 살살 건드려 실토 받았지. 그건 그렇구 B좀 작업해서 그 땅 개발하자. 아파트로…”


결국 2년의 작업 끝에 B는 H건설에 그 땅을 500억원에 내 놓았다. 그 땅은 B의 부친이 20여년 전에 1억원 주고 산 땅이라고 하니, 또 한명의 재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B는 그 돈의 상당 부분으로 또 다른 땅을 사고는 ‘피지’로 떠났다.

“땅”

최근 들어서 L부총리, C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K건설교통부장관이 줄줄이 땅으로 돈을 벌고, 땅으로 옷을 벗었다. 그들의 행위가 원칙적으로 따져서는 도덕적인 문제일 뿐, 일반인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사안들이다. 공직자가 월급 말고는 돈 벌기 힘든 그런 시대가 왔다.

여하튼 땅은 계속 오른다. 신도시 개발, SOC 사업 등의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땅으로 돈 버는 일은 아주 쉽다. 그것이 공무원들이 공직자를 할 만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개발되거나 수용되는 택지의 길목을 사면 되기 때문이다. 사업 계획을 발표한 후, 땅값이 2배가 뛰는 것은 채 몇 달이 걸리지 않는다.

① 보상이 풀리는 인근 지역의 토지 가격은 금방 2배가 된다.
신도시나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보상이 실시될 때까지는 보통 3년에서 5년이 걸린다. 그 시간에 인근 토지는 최소 2배 이상 오른다. 신도시가 발표되고 나서 주변 땅을 구입하더라도 결코 늦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용도 변경설이 나와도 2~3배 금방 오른다.

② 10년에 10배 오르는 것이 땅의 정설.
땅은 일반적으로 10년에 10배 오른다. 단, 개발가능지 주변이어야 한다. 1994년 나는 실험적으로 신탄진에 땅을 500평 샀다. 평당 2만원씩 총 1천만원을 투자했다. 4미터 도로를 끼고 있는 평지의 정방형으로 가든 부지로 적합한 그런 땅이다. 지목은 임야. 딱 10년이 지나서 지난 해 행정 수도 개발 이슈가 떠오르면서 1억2천만원에 팔았다. 그리고, 2천만원을 부동산 수수료로 줬다. 그래도 10배였다. 대체적으로 부동산 업자들의 경우를 보면, 100평 이하의 작은 평지라도 개발권이면 정확히 10배 올랐다. 통계가 그러하니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③ 땅은 정가가 없다.
땅은 한마디로 부르는게 값이다. 또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서로 정하면 아무리 높은 가격이라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따라서, 땅 값은 쉽게 오른다. 공정위나 금융감독원의 승인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 땅값은 다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 땅에 대한 수요가 끊임 없이 발생하고, 땅의 면적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땅을 사고 그 가격을 얼마라고 매기면 그 가격은 호가일지언정 그렇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땅의 매력이다.

④ 토지 투자의 3가지 종류
◆ 좋다고 생각 되는 땅을 사서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가장 손쉬우면서 큰 돈을 벌 수도 있어서 가장 많이 선호되는 땅 투자 방법이다. 머리 좋다는 정부의 고위 관리들도 이 방법을 쓴다. 다만, 일반인들과 다른 것은 개발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안다는 것이다. 그런 지식이 없어도, 이 곳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감이 온다. 부동산을 오래 하면 당연히 생기는 노하우이다.

◆ 땅을 개발해서 가치를 키우고, 이익을 얻는 것. 자신의 의지가 가미되는 경우로, 성공할 경우 만족도가 높아진다. 작은 돈으로 큰 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Risk도 높다. 지구 단위 계획, 형질 변경, 아파트 건설 등 대형 개발 사업을 하려면 대출과 연대 보증, 분양 등 고난이도의 기술과 연구가 들어가야 한다. 쉽게는 공업 지역이 주거 지역이 되던지, 준주거 지역이 되면 즉시 몇 배 오른다. 우리나라는 지역, 지구 변경에 있어, 선진국처럼 주민공청회 제도가 없어서, 공공 기관의 Plan에 의하여 쉽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학에서 용도 변경 또한 크게는 개발로 본다.

◆ 싼 가격에 사서 적정가에 파는 것 부동산을 자주 접하다 보면, 정말 좋은 땅이 싼 가격에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외지인들이 소유자여서 그 지역 물정을 모르거나, 상속에 의한 경우, 또는 부동산이 환금성이 약해서 생기는 현상, 급매물, 경매, 공매 등이다. 이런 경우는 자금력이 뒷바침 된다면 일시불로 사서 곧 정상가로 되팔 수 있다. 나는 땅이 2~3달만에 매입가의 2배로 다시 팔리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땅, 앞으로 어떻게 될까?

땅은 앞으로도 계속 오른다. 그 상승폭이나 속도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의 인구가 토지가액으로 50.6%, 면적으로 37%를 보유하고 있다. 가진 자들이 전체 땅의 반 이상을 홀딩하고 내놓지 않기 때문에, 유동성 있는 땅이 적어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좀 더 넓게 봐도 10%의 인구가 토지가액으로 78%를 소유하고 있다.

땅의 지니계수 (이탈리아 통계학자 지니가 만든 소득 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가 0.86으로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도 한국의 토지 불평등 정도는 아주 심각하다. 지니 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한 것인데, 소득 분배의 지니계수가 0.306임과 비교할 때, 토지 분배의 불평등이 소득 분배의 불평등보다 2.8배나 높다.

더 구체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우리나라 1.5%의 인구가 사유지의 60% 이상을 가지고 있다. 심각한 문제이다. 그렇다고 “1가구 1주택”의 정책처럼 “1가구 100평 소유 상한제”등의 규제 정책을 쓸 수 있을까? 그런 확실한 정책이 아닌 “세금”만으로는 부동산의 상승을 잡을 수 없다. 세금이 오르는 만큼 부동산 가격도 올려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10개의 사탕 중 7개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가지고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손”에는 우리 국민의 땅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 부자의 기준 등 신념과 문화, 가치관... 그리고 정책 입안자와 그의 친인척, 사회 지도층, 전문 부동산업자, 재벌, 정치인, 사업가 등 힘있고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이 한국의 독도를 빼앗기 어려운 것 만큼이나 땅의 지배 구조를 바꾸기도 어렵다. 땅 부자들 대다수의 가훈이 “한 번 산 땅은 절대로 팔지 않는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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