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나를 찾아왔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 2005.03.25 12:41

[영화속 성공학]일 포스티노..시를 통해 찾은 친구, 사랑

편집자주 | 영화 속 이야기는 물론 현실속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엔 세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온갖 일들이 오롯이 녹아있지요. 이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삶의 모습속에서 참된 삶과 진정한 성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고자 합니다.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 속으로 들어간 것도 이미 다섯번째다. 지나간 시간속으로 날아간 기억때문일까.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낭만적인 음악이 주는 포근함, 제대로인 배우들이 녹여내는 삶의 따뜻함에 또 한번 거나하게 취해버렸다.

일주일 전이었다. 고민은 두번째 원고를 끝내자마자 바로 시작됐다. 세번째 '영화속 성공학'으로 어떤 영화 이야기를 꺼내볼까, 온갖 영화가 다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이번엔 내 인생에서 최고였던 영화에 대해 한번 써보자.

"은유를 너무 되뇌이는 건 좋지 않아. 아무리 뛰어난 표현도 반복해서 읽다보면 느낌이 이상해지지. 시는 파고 들면 느낌이 살지 않아."

영화속에 나오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 말처럼, 인생이자 한 편의 시 자체인 이 영화에 대해 '어쩌구 저쩌구' 장황설을 늘어놓는게 말이나 될 법한가. 그래도 써야만 하는 슬픈(?) 기자의 운명이라니. 왜 이리 박복한 직업을 뭐하러 자청했을까.

궁리끝에 영화속의 주옥같은 메타포(은유)들을 찬찬히 되뇌여 보기로 했다. 물론 번역된 대사이니만큼 훨씬 맛이 떨어지겠지만서두 말이다.

내가 그 나이였을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 강이었는지
뜻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파블로 네루다-

영화는 칠레의 세계적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이탈리아 작은 섬의 우편배달부인 마리오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마리오는 글만 겨우 깨친, 그야말로 평범한 시골 청년이다. 한달에 식수선이 한번 밖에 오지 않는, 그가 사는 섬에 네루다가 망명을 온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네루다를 향한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채용되는 마리오.

"여자, 이것도 여자, 이것도 여자…" 마리오는 신기하다. 네루다에게 오는 편지의 발신자는 죄다 여자였다. 네루다가 연애시를 많이 써서 여자들이 좋아한다 생각하는 마리오. 여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에 시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되나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천천히 감상해 보게."

어느날 마리오는 우연히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오, 아름다운 베아트리체. 마리오는 또 친구 네루다를 찾아간다.
"저 사랑에 빠진 거 같아요."
"거기엔 특별한 치료약이 있지."
"아니요, 전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점점 은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녀의 미소는 나비의 날개짓, 부서지는 파도.'
'벌거숭이 무인도의 밤처럼 섬세한 당신, 당신 머리카락에서 별빛이.'
그런 마리오에게 베아트리체도 점점 빠져든다.

가난한 마리오와 만나는 것을 반대하는 베아트리체의 이모는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에게 준 시를 빼앗아 네루다를 찾아간다. 그녀는 네루다에게 제자인 마리오가 조카를 만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 와중에 네루다는 마리오가 자신의 시를 도용했음을 알게 된다.

"자네, 왜 내 시를 도용했나."
"시는 시를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에요."
슬쩍 흐르는 네루다의 미소. 영화를 보던 나도 씨익 웃는다.

마리오는 결국 베아트리체와 결혼하고, 네루다는 그 증인을 서준다. 수배가 풀리고 망명생활을 끝낸 네루다는 고국 칠레로 돌아간다. 편지 하겠다고 약속했건만, 네루다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세월이 흐르고 네루다는 섬을 다시 찾는다. 그러나 마리오 대신 그를 반기는 건 마리오의 아들 파블리토다. 마리오는 사회주의자 집회에 네루다에게 바치는 시를 낭송하러 갔다가 군중에 밟혀 죽는다. 네루다는 마리오가 녹음기에 남긴 시를 읽는다. 네루다의 눈가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녹음기에 담긴 건 주옥같은 한편의 서정시였다. 작은 파도 소리, 큰 파도 소리, 서글픈 아버지의 그물소리, 별빛 흐르는 소리, 신부님이 치는 종소리... 섬의 아름다움을 기억해주기 바라는 마리오의 마음이었다.

마리오는 시를 통해 친구를 얻었다. 사랑을 얻었다. 지중해 파도 소리속에서 시인이 됐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갔다. 한없이 순박한 미소를 별빛속에 남기고서. 그 별빛은 다시 시가 되어 우리들 가슴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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