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목숨 걸어야 한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 2005.03.09 12:30

[사람&경영] 사소한 것들이 신뢰의 원천..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S그룹의 강의를 갈 때마다 그들의 치밀함과 배려에 늘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사전에 정중한 안내와 부탁은 기본이다.

이번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고, 대상은 누구이고, 그 동안 우리 회사의 정황은 이렇고 사장님이 강조하는 것이 이런 것이며… 주기적으로 잊지 않게끔 주의를 환기시키며 항상 배차를 해 아무 불편함 없이 강의장에 올 수 있게 한다.

낯선 장소에 사는 강사의 경우 기사가 길 때문에 헤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사를 하루 전에 사전 답사시키기까지 한단다. 차를 타고 가는 중간에도 몇 번씩 기사에게 확인을 하는 것 같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식사는 했는지. 그 외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물어보고 확인하면서 일을 진행한다.

강사료의 경우도 당일 날 지급하거나, 그 주를 넘기지 않는다. 또 강사료에 붙는 세금도 회사에서 부담함으로서 강의하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지만 별 것 아닌 그런 것들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반면 모 글로벌기업과의 일은 두고 두고 맘에 걸린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글로벌 기업이다. 작년에 그 회사 아태지역 회장의 초청으로 중국에 가 열흘간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회사는 중국에서 급속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그에 따라 능력 있는 매니저를 조기에 발굴하여 경영자로 배치하는 문제가 시급했다. 매니저를 일일이 인터뷰하고 평가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임무였다.

영어로 중국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평가한다는 일 자체가 고되고 힘들었지만 새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일을 했다. 문제는 비용 지급을 하면서 나타났다. 처음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서류제출을 요구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시간을 끌더니 급기야는 중국에서 한국에 송금을 하려면 어디어디를 거쳐야 하는데 언제쯤 절차가 끝날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면서 6개월 이상을 끌었다.

거의 포기를 하고 있을 즈음 입금이 되긴 했지만 그 회사에 대한 신뢰는 이미 산산 조각나 있었다.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주고 받는데 1년 가까이 걸리는 회사가 무슨 글로벌 기업일까? 자신들이 받을 돈도 저렇게 질질 끌까?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의 요청으로 졸업 후 시내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보니 내가 제일 먼저 나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있으려니 해서 기다리는데 10분에서 40분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명색이 교수고 어른인데 그것도 자신들이 먼저 만나자고 부탁을 해 놓고…불쾌했지만 만났으니 용건을 듣기로 했다. 그들의 말은 상사가 요구하는 것도 너무 많고, 월급은 적은데 비전도 보이지 않는데 이런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 인내를 갖고 전문성도 키우고 신뢰를 쌓아 한 걸음씩 올라가라"는 의례적인 얘기를 하고 헤어졌다. 얼마 후에 그들로부터 다시 만나자는 요청이 왔다.

바쁘기는 했지만 그러기로 하고 전과자(?)인 그들에게 제 시간에 나와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역시 제 시간에 나타난 것은 나 뿐이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한 친구는 아직 회사에 있고 (30분은 걸림), 한 친구는 오는 중이란다.

나는 지체 없이 그들에게 얘기했다. "자네들끼리 얘기하다 오게, 나는 집에 가겠네." 비록 한 학기 밖에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렇게 가르친 것에 대해 자괴감도 들고, 사소한 약속시간 하나 못 지키는 사람들에게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의 성의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소한 일을 대범하게 무시하면서 신뢰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 약속 시간 하나도 못 지키는 사람이 정부의 역할에 대해 핏대를 세우는 경우가 있다. 보고서 날짜 하나를 맞추지 못하면서 회사가 경영을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강사료 하나 제 때 지급하지 못하면서 직원들에게 신뢰경영을 얘기하는 사장도 있다. 다 허망한 일이다. 신뢰란 대단한 일의 축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일이 쌓여 신뢰를 만들기도 하고 허물기도 한다. 삶에서 큰 일이란 별로 없다. 대부분 다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 약속한 시간에 반드시 나타나는 것, 무슨 일이 있으면 사전에 얘기를 해 양해를 구하는 것, 약속한 날짜에 비용을 지급하는 것… 이런 것들이 쌓여 신뢰를 만드는 것이다.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베스트 클릭

  1. 1 "번개탄 검색"…'선우은숙과 이혼' 유영재, 정신병원 긴급 입원
  2. 2 유영재 정신병원 입원에 선우은숙 '황당'…"법적 절차 그대로 진행"
  3. 3 법원장을 변호사로…조형기, 사체유기에도 '집행유예 감형' 비결
  4. 4 "통장 사진 보내라 해서 보냈는데" 첫출근 전에 잘린 직원…왜?
  5. 5 '개저씨' 취급 방시혁 덕에... 민희진 최소 700억 돈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