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고 싶었는데..."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 2005.02.25 18:18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당신은 내 머리속을 항해하는
꿈속의 배
당신의 체취는 향처럼 타오르고,
당신의 손길은 비단처럼 내 피부를 감돌아
가슴을 매만진다.
...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면 당신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당신의 숨결은 나를 감싼 해무(海霧)같던 것
...

- Only when I sleep-

'주홍글씨'의 클럽가수 가희가 남기고 간 노래가사처럼 이은주의 죽음은 향불 연기가 돼 사람들의 폐부에 스며든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흐느적거리는 듯한 코어스(The corrs)의 히피풍 원곡은, 이은주의 갸냘픈 목소리와 만나 지친 영혼의 애절한 진혼곡으로 진화한다.

책상위에 펼쳐진 또 하나의 자살이 이은주의 목소리 못지 않게 뒤통수를 멍하게 만든다. 영국 만화가 앤디 라일리가 그린 카툰집 '돌아온 자살토끼'. 때론 혼자, 때론 떼로 그림에 등장하는 자살토끼들은 놀이를 즐기듯 온갖 자살수단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밧줄로 말뚝에 묵인채 반지를 향해 처절하게 손을 내미는 골룸, 그의 허리춤에 묶인 밧줄에 목을 맨 자살토끼의 얼굴이 이은주와 오버랩된다. 골룸은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이다. 그 탐욕 뒤에 매달린 자살토끼는 반지는 물론이고 자신의 죽음조차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무표정으로 골룸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라일리의 자살토끼는 삶에 대한 역설적인 애정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현실속의 이은주는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떠다니는 꿈속의 배가 돼 팬들 곁을 떠났다.

죽은자 뒤에 남는 것은 추측뿐, 그 사연과 한을 아무도 측량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기고간 활자는 자살토끼의 얼굴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죽기 불과 일주일전에도 3억5000만원의 광고계약을 맺었던 그가 '돈 있음 좋은데, 돈을 벌고 싶었는데...' 라고 했다. 돈과 명성을 다 얻은 줄로만 알았던 재주 많은 여배우의 죽음은, 벌어들이는 돈의 절대적 규모가 모든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 생각케 한다.


사람들은 그의 유서처럼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기에" 돈을 벌고자 한다. 그의 말처럼 "돈을 벌면 가족끼리 한 집에서 살면서..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다 해보고 행복하게..." 사는 것, 흔히 하는 표현으로 '경제적 자유'를 향한 추구가 돈이라는 대상물로 나타난다.

그 추구가 더 이상의 출구가 없을만큼 좌절될 때, 스스로에게 또 다른 자유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을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10만명당 연간 자살자가 18명으로 세계4위에 달하고 연평균 자살 증가율이 OECD 회원국중 가장 높다고 한다. 그 많은 죽음의 뒤편에 '돈'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혹자는, 돈을 둘러싼 의혹과 책임의 무게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에 실패해 자살하는 사람이 나올때가 바닥이라는 섬뜩한 '상식'이 떠돈다. '10억 만들기'를 목표로 전재산을 주식과 로또복권에 쏟아부었다가 실패하고, 딸과 동반자살을 시도해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의 이야기도 듣는다.

돈이 경제적 자유를 위한 수단일수는 있다. 하지만 누리고 느끼는 자유의 크기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경제적 자유 말고도 이 세상에는 누릴만한 자유와 기쁨이 많다.

남겨진 사람들의 독백일 뿐이지만,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떠올리고 인용하는 고사가 있다(더는 인용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

-송나라 태종때 바둑국수 가현(賈玄)은 신묘한 수로 이름을 날렸다. 왕과 대국할때면 늘 한집차이로 져 주는 '충성'을 발휘했다. 나중엔 왕이 이를 눈치채고 '네가 나한테 지면 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두는 판마다 '빅'이 됐다.

왕은 더욱 화가났다.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하면 연못속에 던져 죽이겠다'고 했다. 차마 왕을 이기는 불충을 저지를수 없었던 가현은 또다시 '빅'을 냈다. '설마 죽이기야...'하는 생각이었을게다. 그러나 태종은 정말로 '여봐라, 저놈을 끌고가서 연못에 쳐넣어라'하고 소리쳤다. 병사들에게 끌려가던 가현은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 제 손안에 바둑돌 하나가 아직 남아 있사옵니다"...태종은 일그러졌던 얼굴을 펴고 껄껄껄 웃으며 상을 내렸다-

투자건 인생이건, 절체절명의 순간에 밧줄을 끊고서 툭툭 털고 일어서게 만들 마지막 바둑돌은 손 안에 쥐고 있어야 한다.

그 마지막 바둑돌이 꼭 돈이어야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외로움에 진저리 치면서 우리 곁을 떠나간 이은주가 자신의 외로움과 좌절감을 들어줄 친구를 찾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말처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도 마지막 바둑돌일 수 있다.

"Up to the sky, Where angels fly, I'll never die(천사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위에서, 나는 결코 죽지 않으리)"
가희가 부르던 노래의 마지막 구절을 들으며, 어제 한 줌의 재가 된 젊은 영혼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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