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정치는 1류, 기업은 3류?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 2004.12.05 14:15
아무래도 기업인보다는 정치인의 셈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국회 본회의 통과를 남겨두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과정을 보면 그렇다. 아직도 재계는 감을 못잡고 있다.

지난 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밤 늦도록 본회의장에 대기하며 '단독 통과'를 시도한 걸 보면 이대로 끝인가 싶었는데 결국 표결이 미뤄졌다.

그러나 이 또한 막판 통과를 위한 명분 축적용일 뿐, 이미 공정거래법 통과는 시간 문제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반대로 증시 일각에서는 공정거래법 무산 가능성을 흘리는 세력들도 있다.

뭐가 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며칠전 여의도에서 만난 대기업 대표 C씨도 '불안'과 '불만'을 호소했다. "사실 출총(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 제한규정)만 해도 삼성, LG, 현대차 등 돈 많은 몇몇 그룹 말고는 심각한 문제인데 최후까지 이렇게 정보도 없고 대책도 없으니…"

한나라당은 열심히 기업 편을 들어줄 것 같았는데 정작 국회 상임위, 법사위를 통과할 때 딱히 해준 게 없다. 막판에 가서는 공정거래법을 '포기'하는 대신 국보법 등 더 예민한 문제에서 여당의 양보를 얻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개혁성향이 강한 386 의원들은 지난 10월을 전후해 그룹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전경련 회장단과 만나 덕담을 주고 받았다. 이 때만해도 재계는 여당과 말이 통하지 않을까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그건 '정치'였다. 재계는 속이 타서 만났지만 정치인들은 그런 자리를 통해 '유연한 모습'을 한 번 보여준 후 돌아서서 잊어버린다.

재계는 지난 6월 공정거래법 개정안 공청회와 토론회가 활발하게 시작될 무렵에 비해 한 걸음도 정치권에 접근하지 못했다. 속을 들여다 보면 정무위 소속 일부 여당 의원들이 토론회에서 "재벌들 못 믿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재계의 논리가 약했던 건지, 아예 설득의 여지가 없었던 건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과론으로 보자면 재계는 헛발질을 한 셈이다. 접근 방식이 틀렸다는 얘기다.


만약 한나라당이 '4대 입법' 저지에 힘을 덜 쏟자고 마음 먹으면 공정거래법에 관한 한 열린우리당의 양보를 쉽게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결심하고 한나라당과 '거래'를 한다면 공정거래법 개정안 쯤이야 순식간에 통과되지 않을까.

이쯤되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재계 의견을 담으려면 국보법에 매달리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후회가 나올법도 하다. 정치인들에게 맞는 정치적인 접근법을 고민했어야 하는데, 재계가 너무 순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계 일각에서는 "올해 경제관련 법안 처리과정을 대결과 승부의 구도로 보면 '정치는 1류, 기업은 3류'라고 해도 된다"는 냉소와 자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을 만만히 봤던 재계가 치러야 할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 같다. 법안 처리가 늘어지다 보니 '법 시행 이후'를 꼼꼼히 준비한 기업들이 많지 않다. 정치인들의 셈법을 뒤늦게 눈치 챈 기업들이 이제와서 부산을 떨어 봐야 소용 없다. 어떻게 되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로 흘려버린 여러 달 세월이 그 자체로 비용이다. 집단소송법이나 비정규직입법, 기업도시법도 마찬가지 사례가 될 공산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정치인의 셈법에 맞춰 보다 '잘 드는 칼'을 준비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마저 등장하고 있다.

법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파격적으로 정치자금 배분구조를 바꾸든지, 아니면 낙선운동이라도 펼치자는 것이다. 뒤로 은밀히 대화하는 길을 찾거나 고작 호소하고 매달리는 정도의 '올드 패션'으로는 이 힘겨운 추위를 견뎌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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