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LG그룹, 책임의 무게는?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 2004.11.28 17:18

LG카드 채권 출자전환 요구에 여론 저울질..채권단 "각서에 근거조항 있다"

지난 해 이맘 때 일인데 훨씬 멀게 느껴진다. 작년 11월, 부실을 못 견디고 주저 앉은 LG카드 때문에 금융시장은 위기에 빠졌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은행 지원을 끌어들인 끝에 LG카드는 간신히 회생의 길로 들어섰다.

1년이 지난 지금 LG카드에 대한 후속 조치로 다시 시장이 시끄럽다. 채권단을 대표해 LG카드를 관리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1조2000억원의 추가 출자 전환을 추진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이 웅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초점은 LG그룹이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LG그룹이 기업어음 등의 형태로 LG카드에 지원한 1조1750억원 가운데 지주사 명의로 돼 있어 출자를 할 수 없는 3000억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8750억원을 출자전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채권단은 LG그룹에 '원죄'를 묻고 있다. 소유 관계를 떠나 LG그룹은 LG카드 부실에 대해 숙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LG그룹은 최후까지 줄다리기를 했다. 채권단은 자금지원의 전제로 구본무 회장의 연대보증을 요구했다가 팽팽한 대치 끝에 결국 요구를 철회하고 지원을 시작했다. 채권단이 물러선 게 아니라 사실상 협상의 주체였던 정부가 물러섰다.

은행 사람들은 당시 '김진표 부총리가 LG에 졌다'고 공공연히 얘기했다. '시장이 무너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그 때 정부의 논리였다. 채권단은 LG가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너무 가볍게 몸을 뺐다고 두고 두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그래서 LG그룹이 이번에도 출자전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산업은행은 다른 채권은행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에야 곧 시장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에도 LG가 손을 턴다면 용납하기 어렵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에게 "LG를 끌어들일 명문화된 의무조항이 전혀 없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지난해 받은 '항복 문서'(구본무 회장이 제출한 각서)에는 해석하기에 따라 LG를 옭아 맬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권단이 수단 가리지 않고 LG와 극단적인 싸움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요즘 같은 상황에는 은행이 '을'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조차 영업라인에서는 LG의 눈치를 본다. 결국 이번에도 막후에서 정부 당국이 손을 쓰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출자전환 문제에 대해 LG그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각 계열사별 이사회에서 결정할 문제지만 사외이사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채권은 도중에 회수할 길이 있지만 주식으로 바꿔 놓으면 LG카드가 완전히 정상화 돼 주가가 제자리를 찾기 전까지는 묶여 있어야 한다. 그만큼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LG의 주주들에 대한 배임의 소지마저 있다는 것이다.

물론 LG그룹도 LG카드 부실에 책임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채권단이 요구한대로 '당연히 출자전환 하겠소'하고 나설 처지는 아니다. LG 주장대로 주주가 있고 이사회가 있다. 말을 아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LG그룹이 여론을 떠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 주주와 이사회를 설득할 명분을 찾는 것이고, 예상외로 여론이 잠잠하면 버텨 보려고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럴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LG그룹이 '원죄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시장을 통해 가늠하려 한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LG에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묻고 있고 LG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볼멘 소리다. 'LG카드 사태'는 1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서로 속을 끓이고 눈치를 보면서 해법을 찾고 있다. 애초부터 시장원리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가 맞는다면, 이 모든 상황 역시 우리 경제가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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