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경영코칭]인재가 떠날때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부사장 | 2004.11.12 13:17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굿바이 하는 것이라고 멜라니 소프카는 노래했다.

요즘은 구질구질하게 붙잡지도 않고, 울고불고 매달리지도 않고 쿨하게 헤어지는 모양이다.

"너 맘 변했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안녕" 하는 쿨한 헤어짐. 역설적으로 거기에선 떠나는 상대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안쓰러운 자기 방어가 읽힌다.

조직에도 만남과 헤어짐이 늘 있다. 인재가 날아갈 때 쿨하게 굿바이 할 수 있는 상사는 별로 없다. CEO들은 말한다. 직원들 못지 않게 과로하면서, 자금 걱정에 타 업체와의 경쟁에 시달리는 CEO에게 유일한 정서적 보상이 있다면 그것은 직원들의 존경이라고.... 떠나는 인재는 그 마지막 보상마저 흠집을 낸다. 그래서 애인이 떠날 때처럼 자존심 상하고 허탈한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한 중견직원이 갑자기 그만 두겠다고 한다. 그것도 최대 성수기에 대체할 인력도 없는데.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면서 이럴 수가 있나'하는 섭섭함이 앞섰다. '크고 작은 실수를 할 때는 내가 커버해주고, 이만큼 크도록 참아주었는데.'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배신감에 괘씸하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잡아 둘 수도 없고, 어찌나 마음 고생이 되었는지 피부병까지 얻었다. 그 뒤에도 그를 떠올리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이렇게 앙금이 남는 걸 보면 쿨하게 굿바이하는 데 실패한 거다.

이번엔 한 직원이 이 메일을 보내왔다.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언제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그러나 읽는 사람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경험은 이것이 십중팔구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인이라고 말해준다. 만났더니 고민을 털어놓는다.

'요즘 왠지 모르게 일이 힘들고 짜증이 난다', '비전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이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몸도 안 좋다' 등등. 하소연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결국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나 고민이라고 끝을 맺는다. 예감대로 일은 돌아간다.

마음 속에서는 순간 요동이 일어났다. '도대체 정체성이 뭐가 불분명한가', 뚜렷한 역할이 있는데'. '그리고 비전을 남이 주나? 스스로가 고민하고 찾아나가는 거지'. 그건 그렇고 아무리 철이 없기로 어떻게 상사에게 '왠지 짜증난다'는 말을 하냐 말이다. 짜증나는 것까지 내가 어떻게 해결해 줘?


그러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좀더 경청해보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그는 힘들어 하고 있지 않은가. 지레짐작으로 섣불리 판단하거나 성급하게 떠오르는 해결책으로 대응하는 대신 공감해주면서 들으려고 했다.

다 듣고 나니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지금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했는데, 그럼 자네가 보기에 정체성이 분명한 상태란 어떤 걸 말하는 건가?"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야, 중요한 몇 가지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죠. 저는 아르바이트생이 해도 될 잡무를 몇 가지나 하면서 시간을 뺏기고 있으니까요."

오호, 모호했던 안개가 걷히는 것 같다. 한편 걱정도 되었다. 당장 사람을 더 채용할 수도 없는데 어떡하나. "음.. 그렇군, 그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사실 지금은 그 일을 할 사람이 저밖에 없는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연말에는 인원을 충원하니까, 그때는 새 사람에게 시키면 좋겠습니다."

내심 놀랐다. 이렇게 현명한 대답이 나오는구나. "그건 내가 꼭 약속하지. 자네는 어떻게 하면 좀더 비전 있게 일할 수 있을까?" 결국 이야기는 그 직원이 A팀장 밑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을 배울 수 있게 좀더 높은 수준의 업무를 주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내가 거기서 섣부른 가정으로 이런 저런 충고와 훈계를 늘어놓았으면 대화가 어땠을까. 나중에 생각해 봤다. 그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당연히 드러났을 거다. 아마 대화는 피상적이 되었을 거고, 온갖 좋은 얘기, 이른 바 동기부여 되는 얘기를 늘어놓음에도 직원은 그걸 자기 것으로 취하지 못했을 것 같다. 생산적인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 그는 회사를 정말 그만 둘 수도 있었다.

물론 떠나는 인재를 다 붙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떠나려 하는지, 정말 중요한 고민이 무엇인지를 들어주는 것이다. 제대로 들으려면 내 맘 속의 판단, 가정, 해결책을 일단 내려 놓아야 한다. 직장을 그만두려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고민 중이다. 무엇이 기준이냐에 따라서 그 자신에게도 결론은 유동적인 것이다.

경청, 경청, 경청!!! 상사로서 코치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미덕이 경청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내 피부병을 도지게 했던 그 직원과 얘기할 때 나는 괘씸하다는 내 감정을 끝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의 진짜 고민이 나에게 공감되지 못했고 그 당연한 귀결로 쿨하게 놓아주지도, 강력하게 붙잡지도 못했던 것이다. 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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