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J박사, 새벽 2시의 커피타임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 2004.11.03 09:44

[경제기행]삼성, 중교리에서 타임스퀘어까지 (16)

1992년, D램 부문에서 삼성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서자 세간의 평가는 둘로 갈라졌다. '기념비적인 개가'라는 칭찬이 주류를 이뤘지만 일부에서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폄하도 있었다.

그룹의 사활을 걸고 반도체에 매달려 온 삼성으로서는 'D램 세계 1위'를 비뚤게만 보려는 일부 여론이 못 마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제작한 광고의 카피가 바로 '새벽 2시의 커피타임'이다.

모델은 당시 삼성의 연구원이었던 J 박사. 결정적인 대목에서 연구가 막혀 고심하던 J박사는 시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동료 연구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회의를 소집했고, 연구실에 모인 연구원들이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는 게 광고의 스토리 라인.

무심히 새벽에 전화를 걸어 모이자고 한 J박사와 그 시간에 모두 잠들지 않고 각자의 연구에 매달려 있던 연구원들. 시간 개념 없이 모였는데 나중에 보니 새벽 2시 였다는 얘기다.


삼성 기흥공장 내 사무동 옆의 초기 연구동(사진)에서 실제 있었던 일 이다. 이를 광고로 그려낸 것은 밤낮을 가릴 틈도 없이 반도체 개발에 매달려온 삼성인들의 치열한 노력이 '세계 1위'를 일궈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광고를 본 삼성 고위층은 당장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이렇게 새벽 2시까지 일을 한다고 광고를 하면 혹시 우수한 인력들이 '엄청난 노동 강도'에 지레 겁을 먹고 삼성을 기피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노력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반도체 전문 인력 1명이 아쉬운 판에 오해를 사면 곤란하다는 게 최종 결론. 그래서 결국 광고는 단 한번 지면을 타고는 묻혀 버리고 말았다.

따져 보면 불과 12년 전일 뿐인데도 훨씬 더 오래된 듯 느껴지는 것은 삼성도, 반도체 산업도 그만큼 눈부시게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광고 내용에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던 시기의 해프닝이다.

베스트 클릭

  1. 1 조국 "이재명과 연태고량주 마셨다"…고가 술 논란에 직접 해명
  2. 2 "싸게 내놔도 찬밥신세" 빌라 집주인들 곡소리…전세비율 '역대 최저'
  3. 3 한국은 2000만원인데…"네? 400만원이요?" 폭풍성장한 중국 로봇산업[차이나는 중국]
  4. 4 "거긴 아무도 안 사는데요?"…방치한 시골 주택 탓에 2억 '세금폭탄'[TheTax]
  5. 5 "아이 낳으면 1억 지원, 어때요?" 정부가 물었다…국민들 대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