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을 집어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 2004.10.22 18:08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헌법재판관의 가상 독백

수도이전에 대한 견해와 무관하게, 수도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관습헌법'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헌법재판관은 결정문으로만 말하니 일반인들은 그 깊은 뜻을 헤아릴 길이 없다. 감히 헌법재판관의 독백을 미루어 짐작해 볼수 밖에. <경국대전에 제동걸린 국가재테크>

《불교경전 원각경은 '부처님의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봐서야 달도 보지 못하고 어두운 것과 밝은 것도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가 수도서울 이전을 위헌이라 했을때 수도서울 문제만을 보고 그 결정이 지향하는 목표를 보지 못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우리가 관습헌법 차용에 대해 법조계에서조차 거센 반발이 일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보는가.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헌재의 위헌논리에는 수긍하기 힘들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줄 몰랐던 것도 아니다.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투표에 붙일수 있게 한 헌법 72조를 거론해 절차상의 위헌을 지적하는 것이 현행 헌법체계나, 법조계의 '관습'에 부합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상식이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처럼 전후좌우를 고려해서 타협안을 이끌어내는 곳이라면 당연히 선택은 헌법 72조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뇌끝에, 에둘러 가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곧바로 지적해 이번 위헌 결정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길을 택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개정은 국민투표를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헌법 103조를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아니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관습헌법을 위헌결정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이상기류, 즉 사회의 저변을 도도히 흘러오며 이 사회를 지탱해온 '주류'개념에 대한 망각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한시적이고, 어쩌면 돌연변이적인, 정권이 수행할수 있는 통치행위의 범위를 명확히 금그어주는게 헌재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헌법 72조만을 논했다면 헌재는 '국가안위의 중대사항'에 대한 매우 제한적이고 일회적인 판단만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다시 말해, 수도 서울의 문제가 국가 안위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려 국민투표에 부의시킴으로써 수도이전 자체는 부결시킬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 즉 유한한 정권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 전반에 대한 경고의 의미는 반감된다는게 우리의 판단이다.

수도를 서울로 규정한 헌법 조항이 없는데 뭘 개정하느냐고? 그래서 '관습헌법'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고, 관습의 원류를 찾기 위해 역사를 수백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조선 이후인가. 관습헌법을 논할 때의 '관습'이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중요한 골격이 만들어져 전승되기 시작한 시점 이후가 되는게 당연할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 들어섰다가 고려에 망했고, 고려는 주군을 베고 들어섰다가 역성혁명으로 사라졌다. 경주와 송악을 중심으로 한 사회구조도 함께 해체됐으므로 현재우리사회의 원형이었다고 보기 힘들지 않은가. 지배계급이 바뀌는 걸 '관습'의 일부로 포함시킬 경우 체제유지(=보수)의 마지막 보루인 헌재가 설 땅이 없어질 수 밖에...

조선 역시 이성계의 위화도 쿠데타로 들어섰지만, 이후 500년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사회체제를 이어왔다. 일제시대로 맥이 끊기긴 했지만, 이는 외부 세력에 의한 일시적 강점과 복원이었을뿐 우리 사회의 관습이 변한 것은 아니다. 혹자는 이후 대한민국과의 연계과정에 이의를 제기할수도 있다. 또 5.16쿠데타, 12.12 쿠데타를 통해 들어선 정권이 정당성이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도가 서울에서 변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중요하게,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류는 조선-일제-대한민국을 거치면서도 해체되지 않고 면면히 유지돼 왔다. 김영삼 김대중이 야당으로서 정권을 잡았다고 하지만 이 또한 기존 정치 구조상의 권력교체일뿐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의 과거는 한번도 '정리'된 적이 없다.

요컨대, 조선과 현재의 대한민국 사이에는 시대의 유의미한 단절이 없었으며 우리 역시 조선시대의 전통속에 살고 있다는게 우리의 판단이다.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것이며 이번 결정의 배경을 함축하고 있는 키워드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이후 이같은 유구한 역사가 단절되고 기존의 가치를 혼란시키는 일들이 벌어져 왔다. 소외 받던 자가 소외시키던 자를, 지배받던 자가 지배하는 자를, 조사받던 자가 조사하는, 가장 심각하게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세대가 기존 세대를, 억누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 왜 대통령 탄핵에는 헌재가 반대했느냐고? 극악한 패륜단계가 아니고선 군주를 폐하지 않는 것이 '관습헌법'의 영역이었에 기존 가치관을 수호한 것이지 '대통령 노무현'을 보호한 것이 아니다. 지난달 국보법 합헌 판결로 경고신호를 보냈음에도 현 정권이 '판'을 흔드는 일을 그만둘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헌재는 분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번 결정을 통해 수도이전 문제 차원이 아닌, 노무현 정부의 등장 자체가 관습헌법을 심각히 흔드는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

입법권 침해라든지 헌법체계의 혼란이라는 것은 이같은 대의에 비춰볼때 오히려 사소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체계를 뒤흔들었다는 비난조차도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 헌재가 지켜야 할 것은, 1987년 이후 만들어진 헌법조문이 아니라 조선시대 이후 면면히 이어져온, 그리고 여전히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주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반복하건대, 보수-진보, 신-구세대간의 갈등에서 우리도 자유로울수 없으며, 자유롭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시대의 원로들이 나서 중심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정치적 결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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