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행]"강경상고는 금융의 보병 학교"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 2004.09.07 12:10

강경 ② 졸업생 절반 1만명이 금융인...강경과 대전고의 만남은 인재를 낳고..

강경은 유난히 금융인을 많이 배출했다.

이열재 신영증권 고문은 '자본주의의 꽃' 증권업의 산증인이다. 5.16후 3공화국 주도 경제개발계획이 착착 진행되면서 증시가 관심으로 부상되던 65년 신흥증권에 입사, 증권과 연을 맺은뒤 71년 신영증권으로 옮겨 현재까지 33년째 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아마 최장수 현역 증권인 일 듯하다. 30대 임원시대에 30년 넘는 현역활동. 그런 인물도 인물이려니와 그를 받아들이는 회사 또한 많은 걸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강경 출신 금융인들의 큰 형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산업은행과 한국투자신탁 등에서 현장을 지키다 32년만에 세종증권, BNP파리바투신운용 사장으로 발탁된 이원희 한국증권분석사회 부회장은 강경 인맥의 허리를 담당한다. 지역은행인 충청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성, 김관수, 윤은중 전 충청은행장과 임규만 전 충청은행 감사 등도 내노라하는 인물들이다.

강경하면 빼놀수 없는게 강경상고다. 덕수상고 선린상고와 함께 3대 명문 상고로 무수히 많은 경제인을 배출했는데 그중 금융분야가 특히 세다. '은행의 별' 임원들도 부지기수다. 현역으로는 입행 30여년만에 각각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임원으로 올라선 박영호 우리기업 사장(전 우리은행 부행장)과 한도희 신한은행 부행장이 있다.

◇금융의 '보병 학교' 강경상고

제2금융권인 새마을금고 연합회 유용상 회장과 김인태 비씨카드 상무, 백용기 현대증권 고문, 신광희 전 진흥상호신용금고 상무, 강삼영 전 한길종금 상무, 지종권 전 중앙상호신용금고 고문, 이병열 전 동양오리온투자신탁 고문, 유익열 전 대전상호신용금고 전무가 강경상고 이름을 날렸고 그 덕에 후배들로부터 존경하는 선배로 추앙받고 있기도 한다.

신문 지면의 공간적 제한성으로 주요 직책을 우선 소개하지만 유명 타이틀 없이 묵묵히 금융시장을 움직이고 있고 눈에 띠지 않는 자리에서 금융기업체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게 강경상고 출신들이다.


(사진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위치한 강경상고 전경이다. 전통의 상업학교답게 주판알로 장식된 개교 70주년 기념탑이 이채롭다. 2만여명의 강경상고 출신 인사들은 금융계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강경상고는 일제시대인 1920년 강경의 거상과 큰 부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연해 당시 간이농업학교를 상고로 바꾸어 개교했다. 거상들이 창립자인 셈으로 그들은 상인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승하고 싶었을 것이다.

1970년대까지는 졸업생 200여명 중 70 ~ 80%가 주로 은행에 취직했다고 한다. 개교이래 84년간 2만여명의 졸업생중 대략 절반, 1만명 정도가 금융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단일 학교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금융인을 배출한 듯하다. 일종의 금융인 보병부대라 할만 하다.

금융기업의 감독관이자 금융시장의 감시자인 금융감독원에는 김용범 비은행검사1국장과 조성목 비제도금융조사팀장 등이 있다.

강경인이 금융에만 간 것은 아니다. 최고 권력자와의 인접성을 고려하면 대통령과 호흡을 함께 하며 국정의 한축을 담당한 김정렴 전 비서실장(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과 김우식 현 비서실장(전 연세대 총장)이 떠오른다.

학습지와 정수기, 건강음료의 강자 웅진그룹은 강경이 모태다. 창업자이자 그룹회장인 윤석금 회장은 역발상 마케팅의 승부사다. 강경이 포구의 몰락을 젓갈이라는 기발한 방법으로 타개해 나갔다면 윤 회장은 불황기에 공략한다는 모토로 활동해 오늘을 일궈냈다.

과외금지 조치가 내려져 사교육 시장에 혹한이 불어닥친 80년대에는 테이프 학습 교재로, IMF 외환위기 직후 값비싼 정수기를 사 가는 이가 없자 빌려주고 관리해 주는 정수기 렌털 사업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외국기업과 대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 전통음료로 승부를 건 웅진식품도 윤 회장의 손때가 묻어있다. 웅진그룹에는 또다른 강경인 조중형(전 서울지방 국세청장) 고문, 이기승 웅진미디어 대표이사 등도 함께 일하고 있다.

오토바이용 헬멧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홍진크라운의 홍완기 회장도 있다.

◇파생상품의 원조 '젓갈'..문명 수용의 스펀지

뜨거운 햇살 아래 강경을 들른 날은 몹시 길고 바빴다. 하지만 강경의 번잡스러움보다는 처음 찾아가는 문외한의 분주함 때문이라는 해석이 맞을 것이다.

평범한 농촌도 어촌도 아니고, 도회도 시골도 아닌 강경은 지리적으로는 결코 넓지 않다. 하지만 여행객은 알 수 없는 속 깊음이 있는 곳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속깊음은 강경 특산물인 곰삭은 젓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솜씨좋은 주부는 소금 한가지로 12가지 반찬을 만든다'는 말처럼 강경 사람들은 젓갈로 일가를 이뤘고 먹기에는 너무나 작은 새우, 조개 등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서해 뱃사람의 굵은 팔뚝과 논산평야 농부의 억센 손아귀에서 빚어진 돈이 돌고 돌아 강경의 옛 은행에서 불려진 것처럼 젓갈도 비릿한 냄새와 함께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형제가 모두 젓갈매장을 운영하는 박청수(62)씨는 "강경 읍내에만 현재 100평 전후의 규모를 갖춘 대형 도매상만 80여곳 이상이고 중소 상점을 합치면 100여개가 훌쩍 넘는다"며 "고속도로가 뚫리던 70년대부터 포구는 사양길이었지만 젓갈 시장은 오히려 전성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섬세한 손맛의 아낙과 뜻있는 상인들이 70년대 저염도의 젓갈을 개발했고 이제는 전국 젓갈 유통량의 70%를 차지하게 되었다.

동전과 지폐에서 수표와 어음으로, 은행 예금· 주식·채권에서 파생금융상품으로 금융의 주력들이 시대에 따라 바뀌듯 강경 사람들이 다루는 분야도 변하고 있었다.

은행 등 당시까지 생소한 금융기관이 앞다퉈 진출할 토양을 갖췄던 강경은 심지어 기독교 같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데도 적극적이었다. 국내 최초의 성직자로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서해를 통해 국내로 들어온 곳도 강경 포구였고 미국 침례교회 선교사가 1890년대에 처음으로 예배를 가진 곳도 강경읍내의 퇴락한 민가였다.

◇강경과 함께 999년 은진미륵
미내다리가 대(大)상인과 금융가로 돈 많이 벌고 싶은 이들의 자본주의적 신앙의 상징이라면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은 세워진지 천년이나 된 전통적 기복의 대상이다. 고려 광종때 세우기 시작해 목종 9년인 1006년에 세워졌다니 정확히는 999년 된 셈이다.



19m나 되는 은진미륵은 본래 관음보살상이라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을 외면 현세에 복을 받게 된다'는 관음보살로는 만족할 수 없어 57억년 후에 중생을 구한다는 내세의 부처까지 끌어들인, 복에 굶주린 중생들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미륵보살 앞에는 관음전이 있다. 이채로운 것은 관음전에는 부처가 모셔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미륵보살 쪽으로 유리창을 두어 법당 안에서도 불상이 보이게 했다. 거대한 불상 앞에 또다시 금빛나는 부처를 두어 은진미륵의 영험을 반감시키지 않겠다는 강경 사람들의 실용주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 실용주의는 차가운 이성이 필수적인 금융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108배라도 올리려고 법당 안에 들어섰다.

◇법당 안의 박정희 대통령

정말 불상은 없었지만 왼쪽에 이상한 사진이 보였다. 빛바랜 액자 속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담겨 있고 향이 피워져 있었다. 언뜻 보면 박 전 대통령을 모시는 것처럼도 보였다.

속세와의 악연 때문인지 자신을 밝히기를 꺼리는 보살에게 까닭을 묻자 "70년대까지만 해도 관촉사까지 오는 길이 외지고 험했는데 절에 들른 박 대통령이 도로 포장을 지시해 지금처럼 도로가 깔렸다"며 "관촉사 말고도 전국 여러 절에서 박 대통령을 불당 안에 모시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듣고 보니 차에서 내려 5분만 걸으면 은진미륵과 마주할 수 있는 길이 여느 사찰과 다르게 꽤나 수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터벅터벅 흙길을 걷다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한껏 겸손한 마음으로 사찰 경내에 들어서는 이들의 보람은 빼앗아 버렸다.

어쩌면 어떤 형태로든 집권기에 자본주의의 열매를 거둔 박 대통령은 생존경쟁에 내던져질 운명이었던 금융기관에서 잡초 같은 근성을 빼앗아 갔는지도 모른다. 수십년간 계속된 관치금융의 오명은 더 매서운 외국자본의 약육강식의 논리 앞에 스러져갔다. 강경의 퇴락한 은행 건물도 같은 신세처럼 느껴졌다.

이땅에 근대 금융과 산업, 경제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 그가 뿌린 씨앗이 잘 자라 만개하고 탐스런 과실을 맺는냐 마는냐, 어떤 열매를 맺게 할 것이냐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강경 출신들은 대거 반도 중앙의 명문 대전고로 진학,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우리나라 금융인맥의 큰 흐름을 이룬다. 강경과 대전고의 만남,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형제를 비롯, 숱한 인재를 낳은 인연은 거기서 시작된다.


/사진=박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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