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이미지관리]수락하듯 거절하라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사장 | 2004.08.23 15:46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 누구의 부탁은 매우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청탁이 두려워 요즘은 누가 만나자면 겁부터 난다는 분도 있다. 우리가 보통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 때문도 있고, 상대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 두려운 때문이 크다.

중학생 때에 한 외국인 가정에 가서 회화를 배운 적이 있다. 어느 날 그 가족들이 우유를 마시며 내게 권했는데, 우리의 정서상 첫 마디는 겸손하게 사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노, 땡큐”라고 겸손하게 거절을 했더니, 더 이상 우유를 권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마셔버렸다. 거절을 한 건 나인데 그 낯선 반응에 민망해진 나는 회화 수업 내내 대답도 잘 못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나이트 클럽에 갔을 때 낯선 남자가 춤을 추자고 한 일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흔히 하듯이 처음에 거절을 했더니 씽긋 웃고는 자리로 가버렸다. 그 후 슬쩍슬쩍 그를 훔쳐보았지만 나에게 거절당한 그의 기분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처럼 그들은 직설적으로 거절을 하고 또 받아들인다.

무엇을 청하든, 누구에게 청하든 거절당할 수 있다는 전제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작은 수락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흔히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 작은 거절에도 상처받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내 공격적이 된다. 별의별 열등감의 요소를 거절의 이유로 다 끄집어내어 스스로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거절당했다고 해서 자신이 모독당한 것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다.  

영업직 신입직원들은 거절당하는 법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훈련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거절을 이겨내지 못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바로 지금이라서, 있는 아이템이어서, 가장 싫어하는 색이어서, 돈이 없어서 등 거절의 이유는 많고도 많다. 자신을 거절한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프리카에 갔더니 사람들이 죄다 맨발로 다닌다 하여 신발 팔기를 포기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오히려 신발을 팔 수 있는 무궁무진한 시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무리 상대방에게 거절을 많이 당하는 악조건이라도, 오히려 그 상황을 자신의 능력 발휘와 발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 ‘Rain Check'라는 말이 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스포츠 관람 등을 못했을 때, 다음에 다시 관람할 수 있도록 주는 티켓이다. 거절을 할 때 바로 이 ’Rain Check'을 주면 훨씬 매끄럽다. ‘다음 주에 시간 있으세요?’라 묻는데 ‘아뇨. 전혀요. 스케줄이 꽉 찼어요’라고 끝내버리면 상대방은 벌써 ‘그럼 그 다음 주는 어떠신가요?’라 묻기 전에 치사하다는 느낌부터 갖게 된다.
‘다음 주는 어렵지만, 15일 이후는 원하시는 날짜를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다 맞추도록 하지요’라고 해주기만 해도 거절은 전혀 불쾌하지 않은 것이 된다. 물론 꼭 거절을 하고 싶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보통은 본인의 감정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사실 위주로 나열되고 표현되는 것이 상대에게 불쾌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보통 거절 그 자체보다 거절 방법에 대해서 안주거리로 삼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당당하게 거절하고, 담담하게 거절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 한번 거절은 끝까지 거절로 알아야 서로 편하다. 상대방이 거절을 해도 조르면 된다고 생각하니 서로 복잡해지고 표현과 태도도 지나치게 세진다. 여자들의 ‘안돼요’를 ‘안, 돼요, 돼요...’로 편집해버리는 남자들도 잘못된 것이지만, 조르면 금방 무너지는 거절을 한 적이 있는 여자들도 분명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아이가 조르면 결국은 요구를 들어주는 부모도 잘못이기는 마찬가지다.  

내게 땅을 사라고 수시로 연락하던 어느 부동산업자의 부모님도 그러셨던 것 같다. 그 열의를 꺾고 싶지 않아 좋게 좋게 설명하며 매 통화마다 일일이 대꾸도 해 주며 거절의 말을 했더니, 상대방은 나의 거절을 거절이라 여기지 않고 일년 내내 하루에도 수 없이 나를 괴롭혔다. 어느날 나는 결국 소리를 질렀다. 그 후에야 나에게 부동산을 강매하려는 그 전화가 오지 않고 조용해졌다. 그렇다고 다시는 입도 뻥긋 못하게 애처에 강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 사회가 너무 살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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