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골프칼럼]"방송 끝났는데요"

김수정 MBC 골프캐스터(아나운서) | 2004.06.04 15:12
지난 2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CC 서코스에서 KLPGA `레이크사이드 오픈`이 열렸다. 이 대회를 지켜보면서 문득 2년전 이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정일미 선수의 볼이 18번 홀 그린 옆에 설치돼 있던 붐 마이크 줄 위로 떨어졌다. 중계 방송 현장에서 종종 생기는 일이다. 18번 그린은 다른 홀과는 달라서 선수들의 마지막 격전지(?)이기 때문에 중계 카메라와 장비, 각종 라인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경기 위원들이 와서 `임시 방해물(temporary obstruction)에 걸린 볼은 그 방해물을 제거하거나, 불가능할 경우 프리 드롭(free drop)을 할 수 있다`고 판정함으로써 방송 케이블을 조심스레 옮기고 경기는 속행됐다. 이것은 비단 그린 주변 뿐만이 아니라 전 홀을 통틀어 적용되는 룰인데 요즘 많은 골프 경기가 방송으로 중계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특히, 방송 케이블과 관련된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잊을 수 없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중계를 시작하기 전, 90년 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박세리의 미국 진출 이후 국내에는 갑작스레 골프 붐이 일어나면서 골프 중계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MBC에서도 갑작스레 우승자 인터뷰를 기획했고 `골프치는 유일한 여자 아나운서`라는 이유로 필자도 골프 방송과 인연을 맺게 됐다.

 주어진 역할은 우승권에 드는 선수들을 따라 다니며 전 홀을 스케치하고 중계 말미에 우승한 선수에게 경기 내용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승 기대주 3∼4명을 따라다니며 각 홀마다 특징적인 내용들을 메모해야했다. 사나흘 경기를 지켜보는 사이에 2∼3 킬로 정도 몸무게가 빠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생방송이라는 특수성 앞에 물거품으로 사라진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편성된 시간 안에 마지막 승부 장면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가 중계 PD의 관심사라면 나의 관심사는 `마지막 챔피언 퍼팅 이후에 잘리지(?) 않고 우승자 인터뷰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18번홀 그린 옆에 숨죽이고 앉아 있다가 위닝 퍼팅을 마친 순간 준비하고 있던 마이크를 들고 우승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 아, 아," 동네 이장님처럼 애타게 마이크를 두드려보지만 먹통이질 않는가! 그때 오디오맨이 마이크 케이블을 돌돌 말아 쥐면서 내게 말했다. "저∼, 생방 시간이 모자라서 조금 전에 CM으로 넘어갔는데요..." 허무한 내 인생이여!

 중계 캐스터가 된 이후 첫 골프장 현장 중계방송을 하던 그 날, 나는 정일미 선수의 볼을 보면서 나만의 웃지 못할 기억을 슬그머니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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