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골프에세이]"우리 갸가 참 이쁘쥬"

김수정 MBC 골프캐스터(아나운서) | 2004.04.16 09:33
매주 월요일 나는 지각을 한다. 그것도 10~20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정을 하고 지각을 해버린다. 이유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위성 생중계 골프 대회를 마지막까지 보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잠시 잠잠하던 최경주 선수가 그 특유의 뚝심으로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단독 3위를 달리는 게 아닌가! 흥분된 마음으로 부산하게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때 잠시 최경주 선수의 부모님들이 고향집에서 TV를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지나갔다.

최경주 선수가 PGA 투어에서 두번째 우승을 하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당시 MBC-ESPN에서 '골프 스페셜'이라는 종합 프로그램의 진행을 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그 날 녹화에는 당연히 최 선수 부모님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최 선수의 아버님이 워낙 과묵한(?) 성격이라는 말을 미리 들은 터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녹화에 임했다. 녹화 전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방송 매체를 불편해하는 아버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가급적이면 어린 시절 이야기, 골프를 반대했던이야기, 어려움을 이겨내는 아들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마음 등을 듣고 싶은데 방송 자체를 내키지 않는 아버님과의 인터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했다.

큐가 들어오고 전화가 연결됐다는 사인이 들어왔다.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넨 다음 바로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님, 며느님이 예쁘시죠?” 그러자 어느 시아버지나 그렇듯이 곧 바로 활기찬 대답이 날아왔다. “아이구, 그러믄요. 내 갸아만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지...그 먼데 가서 신랑 뒷바라지 잘 하지, 애 잘 건사하지, 우리 아기만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 뿐이쥬”

그 순간 그는 미국 PGA 투어에서 영광의 우승을 두 번씩이나 차지한 대단한 선수의 ‘대단한’ 아버지이기 이전에 며느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평범한 시아버지가 돼 방송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연습장이 마땅히 없어서 고생한 이야기, 은사에게 발탁돼 유학 생활을 시작한 이야기, ‘밥 벌이 안된다’며 반대했던 이야기 등 그 어떤 출연자보다도 활기차게 대화를 끌어갔다.

방송 스탭들이 안도했음은 물론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 가장 자신있는 이야기부터 시켜라‘ 라는 인터뷰 방법론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후 방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최 선수의 아버지는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이 컸던지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또 한번 이렇게 되뇌었다. ”우리 갸가 참 이쁘쥬...“

성공하는 선수 뒤에는 본인의 기술과 노력 외에도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이 있다는 걸 실감한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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