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보물창고 '사기였나, 도굴됐나'

뉴시스  | 2004.03.17 13:04
부산 남구 문현동 1219 지하 16m 지점에서 발견된 굴은 왜 변조됐을까.

최초 발견자 정충제씨(56 경남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61)의 주장처럼 백준흠(47 서울 중구 회현동 1가 147)김성태(55 부산동구 범일2동 62) 채상훈씨(49 부산 사하구 감천2동 17)등이 굴속에 막대한 금과 보물을 몰래 빼돌리기 위해 그랬을까.금괴와 보물이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

물론 백준흠 김성태 채상훈씨 등은 굴 발굴이후 최근까지의 제주 군산영덕 앞바다등 전국 10여곳에서 보물 발굴에 나서고 있다고 하지만 자세한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그들은 정씨의 접근을 막고 그해 5월말부터 일방적으로 보물이 없다고 했을뿐 굴 내부를 실제 공개한 적 조차 없다.

보물이 없다고 발표한 뒤 지난해까지도 백씨등의 행보는 부산 문현동의 굴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것이 확인된다.발견현장 둘레에는 높은 담벼락을 쳐놓고 그들외에는 들어갈수가 없다.

정씨는 백씨등이 부산항 지하 어뢰공장에서 보물을 빼돌려 일부는 이미 시중에 유출시켰고 상당부분은 이들이 보물 발굴작업중이라고 밝히고 있는 제주도 군산 앞바다등에 분산 매장해놓고 그곳에서 발굴한 양 발표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씨의 주장대로 보물이 있다면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경제에 새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물론 이용호 게이트, 동아건설 보물선 사건등으로 이미 '보물찾기'는 양치기 소년이 되버려 관계당국에서도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매장물법에 따르면 발굴된 매장물은 육지의 경우 40% 바다는 20%가 국가의 몫이다.설령 보물이 없다 하더라도 일제시대의 지하어뢰창고라면 관광명소로서의 가치는 있다.의혹해소차원 아니라도 부산시 등에서는 조직적인 발굴탐사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산 문현동 굴 발견-사기였나 도굴됐나

2002년 3월 2일 굴을 발견하기 하기까지는 정충제씨와 김성태씨가 탐사를 주도했다.정씨는 김씨에 대해 "현재 도굴범의 일당이지만 조수역할을 충실히 해준 그의 도움으로 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이들 둘은 그때부터 갈라서게 된다.

그해 3월18일 정씨가 수중무인카메라로 일본글자 3자가 쓰여진 마대포대가 5단 높이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발굴을 위한 투자자를 찾아나서자 김씨는 백씨와 채상훈씨는 소개했다.정씨는 당시 포대에 쓰여진 글자는 '伊藤 忠'이었다고 말한다. 이후 백씨측과 합류한 김홍랑씨(52 광주 서구 치평동 1171)도 비디오테이프에서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3월26일 정씨는 백씨와 동업자 계약을 하게 된다.정씨는 "이어 4월 5일 김씨가 백씨 채씨등과 함께 발굴운영권을 이양을 요구해 이를 거부하자 발굴작업에서 완전히 나를 배제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해 4월29일에는 김홍랑씨가 굴이 발견된 토지를 7억5000만원에 매입하면서 가세했고 그들은 5월 13일 포세이돈 살베지라는 회사를 세웠다.사장은 백씨가 맡았으나 정씨의 지분을 가장 많은 20%로 인정해준 사실이 확인된다.

이에대해 정씨는 "굴이 발견된 직후인 그해 3월말 김성태씨가 100일만 먼저 빼돌리자고 해 이를 반대했으며 이는 불법이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다"주장했다.당시 정씨는 부산시 문화재과에 정식으로 발굴신고를 했다.

그러나 백씨등은 그해 5월 말부터 굴에는 돌 포대들만이 있다며 일부 주주들의 지분을 회수했다,이에앞서 5월 20일 정씨는 부산지법에 그 굴에 대한 이용및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가처분을 내자 백씨등은 굴이 공개될 것으로 우려 돌포대밖에 없다며 그때부터 굴변조에 들어갔다는게 정씨의 주장이다.


백씨등은 다음달인 6월13일 정씨가 10년전 박수웅씨와 함께 판굴을 보물이 매장된 일제시대 어뢰공장이라고 속여 자신들에게 피해를 줬다며 사기등의 혐의로 고소 고발하기에 이른다.

백씨등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그해 6월22일 이후에도 정씨의 접근을 막았고 2달 뒤인 8월 초 정씨가 언론에 굴 발견 사실을 알리면서 신문등에 보도되자(2002년 8월7일자) 3일 뒤인 8월 10일 부산시경 기자실로 찾아가 굴에는 금이 없고 정씨는 사기꾼이라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내용은 다시 언론에 보도되면서 '보물창고 발견'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정시는 사기꾼이 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백씨등은 계속 정씨의 접근을 막으며 굴에 대한 작업을 계속했고 그해 9월 6일 가처분결정에 따라 부산시청출입기자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확인을 했다.

이자리에서 김성태씨는 15kg들이 이타정밀 포대를 보여주며 굴에서 발견된 돌포대라고 밝힌다.당시 수중촬영에서도 한국산 돌포대만 굴안에 보이자 현장에 모였던 기자들은 돌아갔고 백씨등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듯 했다.

반전조짐은 2003년 2월13일 YTN에서 굴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일기 시작했다.정씨는 이후에도 백씨측의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인부들과 관계자들을 찾아 증언을 듣고 또 촬영된 굴 내부의 흔적과 형태 모양 등을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검증을 거치면서 일제시대에 판 굴이라는 획인을 받아 굴의 변조를 입증했다.


그 이후에는 굴에서 반출된 것으로 보이는 금덩이를 본 목격자들도 나타나면서 굴을 변조한 이유가 도굴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았냐는 의혹이 제기됐다.그러면서 이제는 부산시등 관계당국이 나서 정확한 진실을 가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높아가고 있다.

◇이곳이 주목받는 이유-황금백합작전의 중간기지

정씨는 이 일대가 일제가 패망하기 3달전 실시한 '황금백합작전'을 통해 중국에서 약탈한 수 많은 보물과 금괴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정씨뿐 아니라 이 일대에서 보물을 찾기위해 나선 사람들은 숱하게 많다,물론 굴을 시추한 경우는 정씨가 처음이다.

실제 각종 관련서적들을 보면 일본은 1945년 5월초에 해외 주둔군들에게 점령국에서의 약탈을 지시했다는 것이다.중국에서의 약탈기간은 그해 5월 중순에서 6월 초순까지로 알려져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주로 금괴 금불상 기타문화재급의 보물들을 싹쓸이해서 부산까지 가져왔고 연합군의 해상장악으로 일본 본토로 운반하기가 힘들어지자 잠수함 26척으로 수회에 걸쳐 부산항 우암역 근처 어뢰창고에 숨겼다는 것은 미국 CIA측의 주장이다.

일본이 중국에서 약탈한 물건의 집결지는 북경 군용역이었고 책임자는 당시 일본영사관 육군중좌 미우라 조시오라는 이론도 있다.그는 화차 14량에 보물을 싣고 부산으로 갔으며 보름후 그화차의 종착역은 부산항 군용 우암역이었다는것이다.운반에있어서는 이론이 있지만 보물을 숨긴 곳은 같다.한결같이 부산항에서 가까운 지하 어뢰창고에 숨겼다고 말하고있다.

특히 약탈한 보물중 금괴는 수백톤이었고 금동불좌 36좌에 다이아몬드를 담은 드럼통 백금봉 등 엄청난 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중국의 3대 보물중 하나인 비취쌍불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가치로는 총 10조원에 이른다는 소문도 전해지면서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 일대는 보물을 찾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엘도라도'로 주목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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