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강모씨(78)의 농장 바닥에 열과 피해를 입은 귤들이 떨어져 있다. 물 20ℓ가 들어가는 통 200개에 버려진 귤을 수거해 처분했다./사진=최지은 기자
이날 서귀포시의 낮 최고온도는 섭씨 21.5도.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었지만 지난해 여름 평균 기온인 24.7도와 불과 3도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제주시는 올해 10월까지 낮 최고 기온이 31.3도에 달했다.
제주 7~9월 평균 기온/그래픽=이지혜
지난 7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귤 농장을 운영하는 강모씨(78)가 열과 피해를 입은 레드향을 손으로 따고 있다. 열과 피해란 고온을 견디지 못한 귤껍질이 터져 열매 안이 썩어들어가는 현상을 뜻한다./사진=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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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성산읍의 한 시설농장에서 만난 강모씨(78)는 껍질이 터진 채 썩어 가지에 붙어있는 레드향을 손으로 따내며 "제주에서 태어나 50여년째 귤 농장을 운영하는데 올해 열과 피해가 가장 크다"고 밝혔다.
열과 피해란 고온을 견디지 못한 귤껍질이 터져 열매 안이 썩어들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귤을 재배할 때 열과 피해가 나타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지만 이번 여름은 피해 규모가 남달랐다.
강씨의 농장은 약 3300㎡(1000평) 규모로 레드향과 국내 육성 한라봉 품종인 써니트를 재배한다. 강씨 농장도 지난 8월20일 이후 귤 약 70~80%를 열과 피해로 버려야 했다. 상한 귤을 수거해 담은 20리터(ℓ) 들이 플라스틱 통만 200개에 달했다.
귤 재배를 위해 적합한 하우스 내부 온도는 25도지만 이번 여름은 45도까지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무더위가 10월까지 이어졌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올해 제주의 9월 평균 기온은 27.4도를 기록했다. 1973년 이후 가장 더운 9월이었다.
강씨는 "하우스 내부 온도가 33도를 넘어가면 숨이 턱턱 막혀 들어올 수가 없다"며 "보통 귤나무 한 그루에 15~20㎏의 귤이 열리는데 지금은 한 그루당 1㎏ 정도 남은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2년 전 하우스 내부 곳곳에 더위를 식히기 위한 선풍기를 설치했다. 여름 내내 선풍기를 가동해 내부 온도를 3도 정도 낮췄지만 미리 장비를 설치하지 못한 다른 농장은 더 큰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친구도 인근에서 귤 농장을 하는데 거긴 남는 게 없이 다 떨어져 가지에 접붙임을 해 품종을 바꿨다"고 말했다.
껍질이 얇은 레드향이 써니트보다 피해를 더 크게 입었다. 볕을 가장 많이 받는 나무 윗부분은 열매가 다 떨어진 채 푸른 잎만 무성했다. 노랗게 익지 못한 초록색 귤이 대부분이었다./사진=최지은 기자
수확 시기도 한달가량 늦어졌다. 강씨는 "보통 9월이면 열과 피해가 없는데 11월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며 "예년 같으면 12월쯤 출하하는데 산과 당도는 맞추더라도 상품성을 위해 껍질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면 1월쯤 돼야 수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과는 대구가 유명했는데 이제 강원에서 재배하지 않나. 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아버지 때부터 계속 귤을 재배했는데 점차 다른 과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바다가 육지같이 '휑~' 함서"…지난해 5만2000㎏ 수확한 뿔소라, 올해는 절반 수준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녀·해남들은 지난 8일 금채기가 끝난 후 첫 작업에 나섰다. 어장 관리를 위해 6월1일부터 8월30일까지 뿔소라 등 해산물 채취가 금지되고 10월부터 첫 작업을 시작하는데 한 달 정도 늦어진 셈이다. 작업을 위해 배에 올라탄 해녀와 해남./사진=최지은 기자
사계리 어촌계장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을 때 물질을 할 수 있어 보름마다 3~5일씩 작업할 수 있다"며 "올해는 수온이 높고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작업을 제 때 시작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작업을 마치고 복귀한 해녀들은 "오늘도 바닷속이 휑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해녀는 "오늘 30㎏ 정도 수확했는데 봄까지 있던 미역과 감태도 모두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어 "해녀들은 이걸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앞으로 수온이 계속 오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17살부터 해녀로 활동했다는 김모씨(80)는 "요즘 바닷속은 육지와 다름없다"며 "수온이 높아 해초류가 썩은 뒤 물에 쓸려 사라졌다"고 했다.
김씨 옆에 있던 또 다른 해녀는 "뿔소라는 해초를 먹고 자라 해초 사이에서 채취한다"며 "해초가 사라져버렸으니 뿔소라가 비쩍 마르거나 많이 죽었다"고 했다.
이날 해녀·해남들은 오전 11시20분과 낮 12시45분 두 차례에 걸쳐 작업을 마쳤다. 이들이 가져온 뿔소라는 수협 관계자들이 무게를 재고 곧바로 탑차에 실렸다. 해녀와 해남들이 수확한 뿔소라를 정리하는 모습./사진=최지은 기자
수협 관계자는 "사계리는 어장 관리가 잘 돼서 수확량이 많은 편인데 제주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수확량이 줄었다"며 "수출용으로 물량을 맞춰야 하는데 정해진 물량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계리 어촌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사계리에서는 뿔소라 52톤(t)을 수확했다. 올해는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이 3번 정도 남았지만 21.3t을 수확하는 데 그쳤다.
관계자는 "올해는 비가 많이 오는 등 날씨가 안 좋고 높아진 수온으로 개체수가 줄어 추가 작업을 하더라도 지난해 수확량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수협 관계자는 "사계리는 어장 관리가 잘 돼서 수확량이 많은 편인데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수확량이 줄었다"며 "해외수출용으로 물량을 맞춰야 하는데 정해진 물량을 맞출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수협 관계자들이 해녀와 해남이 수확한 뿔소라를 탑차에 옮기는 모습./사진=최지은 기자
지난 7일 정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인근 식당가에 있는 상가 공실. 한때 김밥집으로 운영됐던 이곳은 현재 텅 비어있다. 왼쪽에 있는 건물 역시 1층 상가가 비워졌다./사진=최지은 기자
불과 2년 전 내국인 관광객 최다 방문 기록을 경신하며 '역대급 호황'을 누린 제주의 경제가 급변했다. 올해 들어 내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기다시피 해서다. 국민들은 제주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유로 △고물가 △낮은 가심비 △바가지 등 서비스 불만족 등을 언급했다.
13일 사단법인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지난달 29일까지 제주를 방문한 내국인 관광객은 1000만4548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3%(67만4784명) 적은 기록이다.
월별로 △1월- 6.2% △2월 -13.2% △3월 -19.5% △4월 -5.3% △5월 -4.5%, △6월 -8.1% △7월 -2.0% △8월 -0.6% △9월 -7.3% 등 감소세를 보였다.
2024년 제주 방문 국내 관광객 월별 증감률/그래픽=김지영
지난 7일 제주 제주시 흑돼지 거리가 찾은 관광객 없이 한산한 모습./사진=김지은 기자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온 직장인 임모씨(30)는 "오키나와에서는 5성급 호텔 디너 코스를 10만원 이내에 먹을 수 있는데 이 가격과 품질의 음식을 제주에서 찾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직장인 장모씨(25)는 중국 상해와 비교해 제주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대학 동기들과 택시로 이동하고 고급 호텔 바도 이용하며 부자처럼 지냈다. 제주에서 고심해서 소비한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제주는 국내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부담된다"고 말했다.
이달 5박 6일 일정으로 일본 도쿄에 다녀온 직장인 김모씨(33)는 "국내에서 25만원에 판매하는 운동화를 일본에서 19만원에 구매했고 국내에서 15만원 하는 위스키도 7만원에 사 왔다"며 "앞서 제주를 2번 다녀왔는데 볼 만큼 다 봤다는 생각이 들어 제주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 때쯤 다시 가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제주 서귀포시 용머리해안 인근 상점에 관광객 없이 텅 비어있다./사진=김지은 기자
제주 1일 여행 평균 경비는 전국 평균 8.8만원의 1.5배인 13만4000원으로 조사됐다. 해당 기관은 2016년 이후 매년 9월마다 2만5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제주는 2022년까지 7년 연속 국내 여름휴가 여행지 만족도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2년 만에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바가지 등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도 제주 여행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장씨는 "제주 여행 후기를 조금만 찾아봐도 관광객에게 덤터기를 씌운다는 내용이 많아서 굳이 피곤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임씨도 "10년 전 제주에 갔을 때 운전을 못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기사들이 하나 같이 한숨을 쉬거나 소리를 질러 안 좋은 기억이 남았다"며 "일본 여행에서는 사람들이 친절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순수 국내 관광객 거의 없다"…사라진 방문객에 관광지 상인들 '울상'
지난 7일 오후 1시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인근 식당가. 점심 식사가 한창일 시간이지만 일대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성산일출봉 입구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식당가는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성산일출봉 입구와 식당가의 거리는 100m 이내였다./사진=최지은 기자
성산일출봉 일대에서 약 30년간 기념품을 판매했다는 50대 김모씨는 "국내 여행객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데 가게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지난달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이라며 "SNS(소셜미디어)를 보면 각종 논란으로 제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들이 많이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패키지여행 가이드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도-섭지코지-성산일출봉 등이 제주 동쪽 필수 방문 코스였는데 성산일출봉 입장료가 오르면서 성산일출봉을 제외하고 일정을 짜는 곳도 있다고 한다"며 "방문객이 없으니 인근에 있던 화장품 로드숍과 각종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6개월 정도 버티고 나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