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한 세일즈’ 김선영, 넘버원 짠한 언니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11.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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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세일즈' 김선영 / 사진=JTBC'정숙한 세일즈' 김선영 / 사진=JTBC


지금 안방극장에서 가장 짠한 언니를 논하자면 단연코 JTBC ‘정숙한 세일즈’의 서영복(김선영)이다. 자식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애틋하고, 남편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애달프고, 친구를 향한 미안함은 가련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영복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쓰이다 못해 종종 아프다.

영복은 ‘정숙한 세일즈’에서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이를 넷이나 낳은 만큼 남편 종선(임철수)과 금실이 끝내주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한가득이다. 영복은 아이를 줄줄이 낳느라 푹 퍼진 몸에도 남편에게 “마돈나가 따로 없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랑받는 여자지만, 그 사랑이 남긴 건 가난뿐이라 금실을 천벌이라 생각한다. 중학생인 첫째 딸에게 변변한 책상 하나 놔주지 못해 마음을 끓고, 6명이 단칸방에서 몸을 구겨가며 자야 하는 현실에 때때로 넋을 놓는다.



'정숙한 세일즈' 김선영 / 사진=JTBC'정숙한 세일즈' 김선영 / 사진=JTBC
영복의 짠함은 9, 10회에서 폭발한다. 빨간 줄 그은 남편이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다가 결국 범죄에 다시 손을 대는데, 하필이면 그 과정에서 영복을 살뜰히 챙겨준 언니 오금희(김성령)의 남편을 차로 치고 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영복은 절규한다. 영복은 남편에게 “나는 내 새끼 위해 못 할 짓 없어. 이제부터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끝까지 안 들키는 거야”라며 침묵을 지시한다. 그 말을 하는 영복의 얼굴엔 슬픔과 분노, 죄책감과 모성애 갖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이보다 짠한 장면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다음 장면은 더 짠하다. 결국 영복도 그의 남편도 심성이 어질어 끝까지 범죄 사실을 숨기지 못했고, 금희는 배신감에 절연을 선언한다. 하지만 영복은 금희가 아무리 매몰차게 굴어도 다시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이때 영복의 입에 나오는 사과의 말은 누구라도 마음 쓰일 수밖에 없을 만큼 애잔하다. 그의 사과는 금희가 “그냥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좋겠”는 하나의 바람으로 “사모님이 저를 티끌 만큼이나도 이해할 구석이 생기면 속이 조금이라도 덜 상할까 싶어서” 찾아갔노라 말한다.

'정숙한 세일즈' 김선영 / 사진=JTBC'정숙한 세일즈' 김선영 / 사진=JTBC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 사이로, 비애를 겹겹이 욱여넣은 영복의 말들은 애처롭다 못해 먹먹하다. 이토록 숨도 못 쉴 만큼 진한 감정선이 폭발했던 이 장면의 탄생은, 오직 김선영이 이를 연기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저변의 감정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어디 하나 빈 곳 없이 애잔한 감정을 세밀하게 실어넣는다. 게다가 그것을 현실의 감각으로 지극하게 자신과 인물과 체화해, 이 장면만 스쳐본 시청자라도 단숨에 이입할 수밖에 없는 감탄스러운 경지의 연기를 보여준다.


‘정숙한 세일즈’에서 김선영의 폼은 연기를 잘 한다는 찬사만으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김선영은 깍쟁이 학부모('일타스캔들')나, 얄미운 금수저('그녀의 사생활'), 또 직업적 사명감이 특출난 의사('고요의 바다') 등 작품에 따라 얼굴을 갈아끼며 대중의 찬사를 받는 연기파이지만, 그중에서도 바닥이 드러난 쌀독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응답하라 1988’의 과부 선영이나, 삶에 더럽게 치이다 못해 몸이 고장 나 버린 ‘세자매’ 희숙과 같은 짠한 면모를 연기할 때 유독 힘이 셌다.

그것은 “연기에 대한 만족이 없다”라고 밝혔던 김선영의 지난 말처럼, 만족과는 거리가 먼 인물에 다가설 때의 결핍을 탁월하게 파고들 줄 아는 본체의 타고난 DNA가 아닐까. 때문에 지독하게 짠해 보이는 영복은 김선영에 의해 그 구역 넘버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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