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진료비 빵빵, "안과 의사 연봉 4억5000만원"…기피과는 웁니다

머니투데이 박미주 기자, 배규민 기자 2024.11.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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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못 받아도 매년 오르는 실손(下)

편집자주 실손의료보험금이 줄줄 새고 있다. 매년 수십만원의 보험료를 내지만 1년에 한 번도 보험금을 받지 않는 가입자가 절반이 넘는다. 5%도 안 되는 가입자가 전체 보험금의 60% 이상을 타가고 있다. 비급여 관리가 안 되면서 실손보험금은 눈먼 돈이 됐다. 적자를 본 보험사는 매년 보험료를 올리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형외과, 안과 차리면 건물 올린다"...특정과 쏠림 의료 생태계 파괴
실손보험 진료과별 지급보험금 추이/그래픽=김지영실손보험 진료과별 지급보험금 추이/그래픽=김지영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 등에 지급된 실손의료보험금 중에서 비급여 보험금의 비율이 7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진료과별 평균 비급여 비율 57%대를 훌쩍 웃돈다. 게다가 두 진료과에 지급된 비급여 금액은 전체 지급액의 22.5%다. 비급여 비율이 높은 진료과의 의사 연봉도 높은 편이다. 이는 필수 진료과 의사의 이탈을 야기해 필수 의료 붕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대형 손해보험사 5곳(메리츠·삼성·현대·KB·DB)의 주요 진료과별 실손보험금 지급현황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체 지급액 9조2860억원 중 비급여 진료 관련 지급액은 5조3524억원으로 전체의 57.6%를 차지한다. 올 상반기에도 전체 지급액 4조9439억원 중 57.8%인 2조8564억원이 비급여 지급액이다.



특히 올 상반기 기준 정형외과의 지급액 대비 비급여액 비율은 71.0%에 이른다. 전체 진료과목의 비급여 비율인 57.8%를 크게 상회한다. 지난해도 정형외과의 비급여 비율은 70.3%로 높았다.

정형외과에 빠져나가는 금액은 1조원대에 이른다. 올 상반기 기준 정형외과에 지급된 보험금은 1조1135억원으로 전체 실손보험금 지급액 4조9439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5%에 이른다. 정형외과에 지급된 비급여 관련 보험금은 79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나 증가했다. 도수치료와 증식치료, 체외충격파치료 등 비급여 물리치료 때문에 비급여 비율이 높고 보험금 지급액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가정의학과는 올 상반기 비급여 진료비로 1843억원 지급됐다. 전년 동기보다 3.8% 늘어난 수준이다. 전체 진료비 대비 비급여 지급액 비중은 70.4%로 높다. 연령과 성별, 질환의 종류와 관계없이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치료 등을 광범위하게 시행하면서 비급여 진료 관련 지급된 보험금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필수의료나 기피과로 분류되는 산부인과의 비급여 비율은 51.5%로 평균보다 낮았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산부인과에서도 성형·요실금 수술 후 하이푸 수술로 허위 청구하거나, 일반적으로 비뇨기과에서 시행되는 전립선 결찰술을 산부인과에서 시행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간 인기과로 꼽힌 안과의 경우 2020년에는 비급여 비율이 80.3%로 높았으나 올 상반기엔 28.9%로 낮아졌다. 2022년 비급여인 백내장 수술 관련 '입원 치료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실손보험 보상 기준이 강화된 영향이다.


사진=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사진=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
비급여 비율이 높을수록 의사 연봉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이 공개한 '혼합진료 금지를 통한 실질의료비 절감방안'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의원 표시과목 중 의사임금이 가장 높은 과목은 안과로 연평균 임금은 4억5837만원이었다. 이어 정형외과 4억284만원, 재활의학과 3억7933만원, 신경외과 3억7065만원, 피부과 3억263만원, 외과 2억9612만원 순이었다. 이들 과목의 비급여율 순위는 상위권이다. 안과는 2위, 정형외과는 3위, 재활의학과는 1위, 신경외과는 4위, 피부과는 8위다.

최근 10년 간 비급여 진료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기과와 그렇지 않은 기피과 간 소득 격차는 확대됐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안과 의사 보수는 4억5837만원으로 2010년 대비 90.8% 올랐다. 두 배 가까이로 뛴 것이다. 정형외과는 4억284만원으로 88.1%, 마취통증의학과 보수는 3억4431만원으로 134.3%나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보수는 1억875만원으로 오히려 16.3% 떨어졌다. 산부인과 의사 보수는 2억5923만원으로 91.9% 올랐지만 인기과 대비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형외과, 안과 의사들의 경우 비급여와 실손보험으로 쉽게 돈을 벌면서 건물을 올리는 사례도 많았다"며 "실손보험을 통해 가격 제한 없이 비급여 치료비를 올려 받을 수 있도록 한 그간의 구조가 인기과와 비인기과를 나누고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줄줄새는 실손' 악순환 끊으려면…비급여 관리 강화가 핵심
비급여 지급보험금 추이/그래픽=이지혜비급여 지급보험금 추이/그래픽=이지혜
백내장 등 비급여로 실손의료보험금이 새면서 관련 항목의 지급기준을 강화했지만 자가골수 무릎주사 등 다른 비급여 항목의 과잉 청구가 나타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한곳을 누르면 다른 곳으로 쏠리는 전형적인 '풍선효과'다. 전체 비급여 진료의 관리 강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2일 손해보험사 14개사의 비급여 실손보험금 지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백내장 수술에 지급된 보험금이 903억원으로 전년 7083억원 대비 87.3% 급감했다. 2022년 지급액도 전년 9514억원 대비 25.6% 감소했다. 2022년 6월 대법원이 '백내장 다초점렌즈 수술은 입원 치료가 필요 없다'고 판결하면서 백내장 수술 환자를 입원시켜 실손보험금을 지급했던 관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비급여 진료 지급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2018년 1조422억원이던 물리치료 지급보험금은 지난해 2조1291억원으로 5년 만에 2배가량으로 급증했다. 전년 대비로는 14.0% 증가했다. 비급여 주사제는 2018년 1979억원에서 지난해 6334억원으로 3배 이상이 됐다. 전년 4104억원보다는 54.3% 늘었다. 2018년 172억원이던 발달지연 지급보험금은 지난해 1599억원으로 9배가량이 됐고 전년 1241억원보다는 28.8% 증가했다.

자가골수 무릎주사 지급보험금 추이/그래픽=김다나자가골수 무릎주사 지급보험금 추이/그래픽=김다나
지난해 7월 신의료기술로 인정돼 비급여 치료가 시작된 자가골수 무릎주사의 지급보험금도 급증했다. 손해보험사 5개사(메리츠·삼성·현대·KB·DB) 기준 올해 1분기 관련 지급액이 88억6000만원으로 전년 전체 지급액 75억9900만원을 넘어섰다. 전체 지급액에서 비급여 지급액은 93.1%인 82억5200만원이다.

서울 강서구 소재의 한 한방병원에서는 가정의학과 의사를 채용해 자가골수 무릎주사 치료를 실시하기도 했다. 백내장 수술 전문병원도 백내장 수술 비용을 실손보험으로 보전받기 어려워지자 정형외과 의사를 고용해 자가골수 무릎주사 치료를 시작했다. 자가골수 무릎주사 시술에 필요한 시간은 1시간 정도이고 특별한 부작용도 없으나 고액의 비급여 비용인 1430만원을 실손보험으로 보전받기 위해 1박2일 입원을 권유한 병원도 있다. 가격은 고무줄이다. 한 보험사에 청구된 비용 기준 자가골수 무릎주사 시술 금액은 최소 약 200만원에서 최대 약 2000만원에 이른다.



다른 비급여 진료 항목도 가격 편차가 심하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2023년 하반기 비급여 보고자료'에 따르면 한방병원의 한방물리요법 진료비 최댓값은 90만원으로 중앙값(9010원)의 99.9배에 달했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척추관절신경치료에 많이 활용되는 유착박리주사(FIMS) 치료비가 최대 450만원으로 중앙값(12만원)의 37.5배였다.

이에 정부가 비급여 진료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도수치료 등 비중증 과잉 비급여 진료의 혼합진료 금지, 비급여 진료 명칭 표준화와 가격 관리·규제 등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치료 효과가 없는 것들은 신의료기술에서 퇴출시켜 실손보험으로 청구할 수 없게 하고, 필수성이 있는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 급여권으로 옮기되 선택성이 강한 비급여 진료는 남용을 막기 위해 급여 진료와 병행진료를 금지시킬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최소한의 비급여 진료 가격을 설정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새 실손보험에서는 진료비의 절반 이상을 본인이 내게 하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정부가 비급여와 급여 진료의 혼합진료를 완전 금지해야 하고, 비급여 항목을 표준화해 실태 파악을 하면서 가격 상한제를 두는 등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다른 나라도 공보험과 혼합하는 비급여는 항목을 결정하거나 가격 범위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일부 비급여 진료의 가격을 공개하지만 효용성이 떨어진다"며 "환자들이 알기 쉽게 질환, 병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하고 가격도 비교하기 쉽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료개혁의 하나로 연내 비급여 관리 강화와 실손보험 구조 개혁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논의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지난 7월 '비급여·실손보험 소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관련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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