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둔 12일 오전 9시 서울 종로 떡집거리가 한산한 모습(왼쪽). 떡집 사장 50대 이모씨는 준비한 수능 떡(오른쪽)이 다 팔릴 지 걱정된다고 했다. /사진=이찬종 기자
수능을 이틀 앞둔 12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떡집 거리. 3대째 같은 자리에서 떡집을 하는 50대 이모씨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이씨가 준비한 수능 선물용 떡은 120박스 이상. 박스 안에는 찹쌀떡과 쑥떡, 인절미가 5~10개씩 들어있었다.
이씨는 가게 앞에 나와 손을 흔들었지만 호응하는 시민들은 없었다. '수능 합격 기원 떡 판매' 글귀가 무색했다. 떡집거리는 한산했고 시민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줄을 길게 섰다.
술떡, 찹쌀떡, 두텁떡 등을 파는 A씨는 "수능 세트는 없다"며 "장사도 힘든데 수능 떡까지 신경 쓰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른 떡집 주인 B씨 역시 "수능용 떡은 따로 없다"며 "수능떡을 사 가는 사람이 이전보다 줄었다"고 했다.
30대 김모씨는 지난해 수능을 보던 사촌에게 '맛있게 먹고 힘내라'는 의미로 소고기를 선물했다. 김씨는 "이전 같이 찹쌀덕을 주고받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사진=독자제공
30대 최모씨는 올해 수능을 보는 조카에게 고급 식당 이용권을 줄 계획이라고 했다. 최씨는 "떡이나 엿 등을 받아도 잘 안 먹게 돼 처치 곤란이라고 하더라"며 "나도 학교나 교회에서 찹쌀떡을 줬는데 몇 달간 방치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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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김모씨는 "지난해 수능을 치른 사촌 동생에게 고기를 선물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여년 전 사촌 언니가 수능을 볼 때 떡과 함께 편지를 써줬다. 그런 문화는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험생들도 떡보다 기프티콘·상품권 등 실용적인 선물을 선호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수생 20대 여모씨는 "모바일상품권이 제일 좋다"며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재수생 20대 박모씨도 "젊은 사람들이 찹쌀떡을 안 좋아한다. 실용적인 선물이 더 낫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명모군은 "상품권이나 기프티콘이 좋다"며 "내 또래는 다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명씨는 "찹쌀떡을 시험 전 선물로 주거나 받아본 경험이 없다"며 "비싼 치킨이나 건강에 좋은 비타민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실용적 가치관 중시, 사회 분위기 반영"
12일 서울 종로 떡집거리에서 찍은 수능응원 떡 세트. /사진=이찬종 기자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옛날 떡·엿 등에는 가족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요즘엔 고생한 수험생을 위해 (수험생) 본인이 좋아하는 선물을 주는 경향이 있다"며 "자식 하나 대학 잘 간다고 가족 전체가 잘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