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6회 반도체대전(SEDEX)’에 대만 TSMC 간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뉴스1
이번 결정은 미국 정부의 명령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로이터는 미 상무부가 AI 가속기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필요한 7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 제한을 부과하는 내용의 공문을 TSMC에 보냈다고 전했다. 다만 미 상무부는 보도 내용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FT에 따르면 TSMC는 성명에서 "우리는 법을 준수하는 회사이며 이번 수출 통제를 포함해 모든 관련 규칙과 규정을 준수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직후 나온 점에서 다른 시각도 보인다. 미국 우선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당선인을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FT는 TSMC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신뢰할 수 없거나 비협조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일을 특히 경계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전 TSMC를 겨냥해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쳐 갔다"며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면서 우리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놓고 생산을 본국으로 옮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TSMC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FT에 "트럼프 당선인을 위한 쇼가 아니라 우리가 선량한 사람들이고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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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뿐 아니라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세계 공급망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에 공장을 둔 미국 기업들은 이미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가 대부분 수입품에 10~20%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하면서 중국산에는 60%를 부과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 소매연합회는 트럼프의 예고대로 관세를 매기면 미국 소비자들은 의류·완구·가구·가전제품·신발을 사는 데만 연간 460억~780억달러(약 64조~109조원)를 더 부담하게 된다고 추산했다.
이에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생산 비중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명 신발 브랜드인 스티브 매든은 1년 내 중국 생산 비중을 40%대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신발 업체 디어스태그스는 내년 1월 트럼프 취임 전까지 중국 공장 생산에 집중해 재고를 쌓아 두겠다는 계획이다. 세탁 세제 '암앤해머'로 유명한 처치&드와이트는 구강 관리 제품 등 일부 생산을 중국 외 지역으로 이전했다.
트럼프는 고율 관세로 공장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고율 관세만으로 제조 공장이 미국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봤다. 미국 장난감 제조업체 베이직 펀 최고경영자(CEO) 제이 포먼은 "1년 안에 미국으로 공장을 옮겨 장난감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중국 외 공장 생산 비중을 늘리고 기타 간접비용 절감 등으로 관세를 상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어스태그스 대표 릭 머스캣은 "공급망을 옮기는 일이 서류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우리 사업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