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민주주의라는 오역의 위험성

머니투데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2024.11.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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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한국의 성공담을 다루고 있어 민주공화국 시민들에게 깊은 자긍심을 주었다. 경제학상은 아제모을루·사이먼 존슨·제임스 로빈슨에게 돌아갔다. 한림원은 이들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를 설명했다. 중요한 한 가지 설명은 사회제도의 지속적 차이다. 이들은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도입한 다양한 정치경제 시스템을 조사해 제도와 번영 간의 관계를 증명했다."

이들은 국가의 흥망이 제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남북한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이를 증명했다. 한국은 성공모델이고 북한은 실패모델이 됐다. 한국의 성공은 부족한 자원, 불리한 지리적 여건 속에서도 좋은 제도를 선택했기에 가능했다. 이에 국제사회에 '자원의 한계는 제도 선택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차제에 우리가 선택한 제도들의 총체인 '민주공화국 체제'의 우수성을 조금 더 친절하게 소개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대한민국이 왜 민주국(democracy)이 아니라 민주공화국(republic)인지, 민주공화국이 민주국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어떻게 막는지를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민주주의로 오역하면서 생기는 위험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와 공화의 두 바퀴로 굴러가는 게 이상적이다. 민주 없는 공화는 공허하며, 공화 없는 민주는 맹목이다. 그런데 민주정으로 번역돼야 할 데모크라시가 민주주의로 오역되면 민주에 의해 공화가 가려지는 위험성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라는 번역어는 데모크라시가 갖는 여러 한계(문제가 있고, 이를 고쳐가면서 발전하는 체제)를 숨기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즉 이 번역어는 데모크라티즘(democracism)과 같이 '완벽한 체제', '절대적인 체제'로 오해하도록 만들고, 이런 효과 때문에 굳이 대화와 숙의 및 공공성을 강조하는 '공화'의 필요성을 배제하게 만든다. 공화를 배제하면 견제와 균형을 잃은 민주는 다수결의 폭정으로 타락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등이 정립한 '정체순환론'에 의하면, 민주정은 군주정, 귀족정보다 나은 체제이지만 최선의 체제는 아니다. 최선의 체제인 혼합정(polity)이나 공화정(republic)보다 낮은 수준의 '견딜만한 체제'이다. 즉 혼합정의 타락한 형태로서 데모크라시는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한계, '다수결의 폭정'으로 타락하는 한계, 다수파와 소수파가 정쟁하면서 공공성을 무시하여 '인민독재로 타락하는 체제'라는 역사적 한계를 갖는다.

데모크라시는 양적으로 다수의 민중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지만 대화와 숙의와 같은 질적인 참여의 부족으로 중우정과 포퓰리즘으로 타락하는 한계를 갖는다. 그래서 이런 데모크라시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것이 공화주의(republicanism)이고, 이런 것이 성공한 체제가 민주공화국으로 번역되는 리퍼블릭(republic)이다. 결론적으로 민주공화국이 민주국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다수결로 표현되는 데모크라시가 '불완전한 체제'임을 인식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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