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민족문제연구소
친일 인사 4389명…선정 기준 두고 논란이 사전은 오른 '친일 인사'는 4389명이다. 1948년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규정한 688명의 약 6배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하에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005명에 비해서도 4배 많다.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인물 선정 논란에도 정부는 이 사전을 바탕으로 독립유공자 19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다.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사후에 친일 행적을 했다면 취소하는 게 마땅하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 인물은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의 진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라며 "친일 행적이 분명한 일부 인물들이 애국지사로 추앙받은 점은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전도된 가치 기준을 바로 세우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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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유족들 소송까지 갔지만, 모두 패소
/사진=식민지역사박물관 갈무리
당시 지만씨는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위해 행한 행적을 무시하고 무조건 친일 인사로 확정 짓는 것은 사자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지만씨뿐만 아니라 화가 장우성과 법조인 엄상섭의 후손, 언론인 장지연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도 모두 같은 결과를 맞이했다.
사전이 발간된 후 진행된 소송에서도 법원은 민족문제연구소 손을 들어줬다.
친일 명단에 오른 일제강점기 만주국 고등관 홍순일씨 아들 홍모씨가 제기한 친일인명사전 복제와 배포금지 청구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원고 패소했다.
"안익태는 친일"···'애국가 폐기' 논란 재점화
19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회에서 안익태가 지휘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YTN 갈무리
영상에서 안익태는 일본인이 쓴 가사에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만주국 환상곡'을 작곡해 이를 직접 지휘했다. 이에 친일 인사가 만든 애국가를 아무런 문제 없이 불러도 되냐는 의문이 제기되며 폐지 논란까지 번졌다.
잠잠했던 논란은 안익태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불거졌다. 당시 이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공청회까지 열렸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불러온 애국가와 작곡가 행적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안익태의 애국가는 1940년대 상해 임시정부가 공식 국가로 인정한 후 대한민국 국가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