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인 척하는 천재" 트럼프에 '찰싹' 머스크…미중 중재자 될까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11.0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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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1등 공신 머스크, 중국서 미중 관계 중재자로 존재감 커질 듯

'어휴 뭘 저렇게까지..'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지난 10월 5일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점프를 하며 지원 하고 있다. 점프하는 머스크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표정이 이채롭다. 2024.10.09  /로이터=뉴스1'어휴 뭘 저렇게까지..'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지난 10월 5일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점프를 하며 지원 하고 있다. 점프하는 머스크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표정이 이채롭다. 2024.10.09 /로이터=뉴스1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승리를 축하하는 장면은, 미국과 관계에 가장 민감한 중국의 현지 기업인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스페이스X나 스타링크로 이미지가 많이 우주화 한 머스크지만 아직 '머스크=테슬라'고 '테슬라=전기차'다. 그런데 트럼프가 누구인가.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이 "중국만 배불리고, 미국 노동자들에겐 피해를 준다"며 "부임 첫 날 전기차 의무화를 백지화하겠다"(7월18일 전당대회 연설)고 한 인물이 아닌가.



또 '테슬라=중국'이다. 2018년에 상하이에 기가팩토리3을 지은 후 중국은 줄곧 테슬라의 최대 시장이자 생산기지였다. 미국이 그렇게 싫다는 중국인들이 테슬라는 사랑한다. 그럴 법도 하다. 기가팩토리3 부품 현지화율은 작년 95%를 넘어섰다. 1차 협력사 중 중국 기업만 350개가 넘는다. 그런 중국에서 테슬라는 올 3분기 24만9135대의 전기차를 팔았다. 전세계 판매량의 54%다.

트럼프에겐 중국이 사실상 적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유권자들에게 가장 선명하게 트럼프를 인식시킨 공약 중 하나가 "중국산 수입품에 60% 이상의 특별관세를 물리겠다"는 거였다. 아예 담을 쌓겠다는 거다. 다시 위대해져야 할 미국을 가로막는 중국을 힘으로 눌러버리겠다는 얘기다. 중국에 베팅한 머스크 입장에선 트럼프가 불편해야 상식이다.



머스크는 그런데, 밥줄을 위협하는 트럼프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선 단독 지원유세를 펼쳤고, 슈퍼팩(정치자금 지원단체)인 '아메리카팩'을 만들어 트럼프에게 무려 1억3200만달러(약 1840억원)를 기부했다. 대선 승리 1등공신 소리까지 나온다.

'천재 아니면 괴짜'라는 평을 받는 머스크다. 이번 대선 행보는 천재의 행보일까 괴짜의 행보일까. 한 중국 진출 외국 금융기관 법인장은 "괴짜를 가장한 천재의 행보 아니겠느냐"고 했다. 미국 내 분석도 그렇다. 당장 AI(인공지능) 투자와 스페이스X 우주개발 지원이 늘어날거란 전망이 제시된다. 허위정보 논란으로 흔들리는 X(옛 트위터)도 규제나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선 그 이상의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미중관계 현주소와 앞으로 흘러갈 상황을 감안할 때 머스크가 둘 수 있었던 최상의 수라는 거다.


대선 결과가 전해진 6일(미국 현지시간) 트럼프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축하 전화를 했다. CNN이 핵심관계자를 인용해 전화 소식을 보도했을 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비밀이다. 화기애애하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첫 번째로 시 주석과 통화해 무역 합의 이행을 촉구하겠다"(9월23일 펜실베이니아 포럼)고 했다. 축하 전화에서 대뜸 그 주제를 꺼내고도 남을 사람이다.

불편한 관계로 출발할 미중관계엔 물꼬를 틀 사람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문법이 그렇다. 트럼프는 2018년 터키에, 2019년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각각 특사를 파견해 병목상태에 놓인 외교 문제를 풀었다. 2017년에 북한에 간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은 개인자격으로 방문했음을 강조했지만 로드먼과 트럼프의 특별한 인연을 감안할 때 사실상 특사 역할을 했다.



트럼프 1기 대중정책에 관여한 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캠프에 남은 게 외교정책 고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 정도다. "중국은 언제든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인물이다. 화해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보면 지금 트럼프와 시진핑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인물, 그것도 미국인은 머스크 말고는 없다.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한편 동경하는 중국에서, 현지화 모범생인 테슬라는 최고의 전략적 파트너다. 머스크는 작년 5월 중국을 찾아 시 주석의 최측근들을 만났고, 11월엔 미국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미국 기업인들을 대동하고 시 주석과 만찬했다. 올 4월엔 중국에서 리창 총리와 회동했다. 대 중국 활동이 이렇게 자유로운 미국 기업인도 머스크 외엔 없다.

트럼프와 머스크 둘 다 장사꾼이다. 머스크가 미중관계에서도 일정 역할을 한다면 트럼프로서는 대가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 그렇게 많은 전기차를 만드는 테슬라지만 미국으론 단 한 대도 수출하지 않는다. 보호무역 신봉자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때론 거짓말도 서슴지않는 트럼프지만 대선 직후 했다는 "머스크는 천재"라는 말은 진심이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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