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리천장은 깨지라고 있는 것

머니투데이 원혜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2024.1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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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광장원혜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광장


올여름 가장 재미있던 뉴스는 지구 반대편 미국 대선 소식이었다. 불과 몇 주새 바이든과 트럼프 토론회, 트럼프 피격, 바이든 후보직 사퇴, 해리스 후보 선출 등 굵직한 사건이 박진감 있게 펼쳐졌다. 대미를 장식한 건 지난 8월 말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였다. 버락 오바마 등 유력 정치인부터 오프라 윈프리 같은 스타 방송인까지 내로라하는 연사들이 참석했고 여기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있었다. 힐러리는 "우리는 함께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에 금을 내왔다"며 해리스가 마침내 유리천장을 깰 준비가 됐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법학석사 유학 과정을 밟고 글로벌 로펌의 뉴욕 오피스에서 단기 파견근무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뉴욕의 웬만한 대형 로펌에는 소위 '다양성위원회'가 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는 다양성이 항상 화두다. 미국의 대형 로펌은 주로 백인 남성 일색인 파트너 구성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는다. 파견근무했던 로펌의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은 뉴욕 오피스에 얼마 안 되는 한국계 파트너 변호사였다. 이 변호사와 만났을 때 그는 "위원장직은 모두에게 욕먹기 쉽고 아무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자리"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데 변호사가 물었다. "한국 로펌에는 미국 같은 인종 문제는 딱히 없을텐데 다양성이 문제 된다면 어떤 국면에서인가요? 요새는 여성 파트너 변호사가 좀 많아졌나요?"



부끄럽지만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진 '고생이겠구나'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우리나라 로펌에선 이런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질문을 받고서야 '다양성'이 남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2015년 로스쿨을 졸업한 뒤 국내 대형 로펌에 입사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10년차가 됐다. 일을 시작했을 때 선배 변호사 중 여성 파트너 변호사 비중은 손에 꼽을 정도도 안 됐다. 팀에서 입사 동기 중 여성은 나 혼자였다. 나이도 비교적 어린 편이라 3년차까지 팀에서 계속 막내였다. 지금이야 동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내심 좋지만 그땐 아니었다. '어린 여성 변호사'로 남들보다 곱절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린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의식하지 않게 됐다. 하루하루 일하느라 바빴기 때문이겠지만 바꿔 말하면 결국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리게 들리는 목소리' 같이 예전에는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요소가 이젠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강점이 될 수 있음도 알게 됐다. 요새는 감사하게도 "변호사님은 항상 밝은 목소리로 응대해 주셔서 연락드리기 편하다"고 말하는 고객도 있다. 주위에 여성 파트너 변호사 비중도 커졌다. 회사 신입을 뽑을 때도 성별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신입 중 여성 변호사 비중도 자연스레 늘고 있는 것 같다.

유리천장은 보이지 않는 천장을 일컫기 위한 표현이지만 동시에 깨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 아닐까 한다. 공교롭게도 이 글이 게재되는 날은 한국시각으로 미국 대선 투표가 진행되는 날이다. 막판까지 양 후보의 지지율이 초박빙 양상을 보이면서 판세가 안개 속이다.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점은 힐러리가 묘사한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깨질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유리천장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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