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노윤서의 해사한 매력이 미소짓게 할 '청설'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10.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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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시대에 맞게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웰메이드 청춘물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모처럼 한국 영화에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청춘 로맨스가 말간 얼굴을 내밀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와 함께 대만 청춘 로맨스를 대표하는 ‘청설’(2010)을 리메이크한 동명 영화로 청춘의 순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감성을 자극한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한때를 떠올리게 하면서 리메이크의 미덕을 놓치지 않는 이 영화는 우리를 잃어버린 순수의 시대로 초대한다.

철학과를 나와 취직 준비를 하던 용준(홍경)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 배달을 마지못해 돕기 시작한다. 수영장으로 단체 도시락 배달을 간 첫날, 그곳에서 청각장애 수영선수 가을(김민주)을 보살피는 언니 여름(노윤서)을 보고 한눈에 반한 용준은 두 자매와 수어로 대화하며 가까워진다. 여름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으로 다가가는 용준과 동생의 뒷바라지만 해오다가 용준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여름, 그리고 용준과 언니의 마음을 알아챈 가을이 20대의 여름을 함께 보낸다.



한국 영화 ‘청설’은 대만 원작 영화의 큰 줄기를 따르되 작은 설정들을 바꿔 디테일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주인공 자매의 관계는 언니를 돕는 동생에서 동생을 돕는 언니로 바뀌었고, 원작에서 주인공들의 대화 창구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한 MSN 메신저는 요즘 시대에 맞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체했다. 원작 영화가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리메이크 한국 영화는 동생 가을 캐릭터의 비중을 높여 세 주인공의 청춘 서사를 강화했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청설’은 세 주인공이 수어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극장에서 봐야 몰입도가 높아지는 영화다. 용준이 부모님,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지만 음성 대사가 현저히 적다. 덕분에 주인공들의 표정과 연기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상영관에 앉아 영화를 보면 제작진이 소리와 음악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소리의 공백을 극대화한 클럽 장면이나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내 실어 나르는 조영욱 음악감독의 음악이 교감대를 형성한다.

주인공 용준을 연기한 홍경은 영화 초반부터 따뜻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원작 영화에서 같은 역할을 맡은 평위옌이 귀엽고 코믹한 이미지를 부각했다면, 홍경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해사한 청년의 모습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이렇게 순수한 청년이 요즘 현실에 존재할까 하는 의문과 의심을 홍경의 진심 어린 연기가 말끔하게 해소한다. 현실의 고달픔은 잠시 잊고 이 순박한 청년의 사랑을 한껏 응원하고 싶어질 정도다.

‘청설’은 ‘우리들의 블루스’(2022), ‘일타 스캔들’(2023) 등 굵직한 드라마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주목받은 노윤서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에 이어 두 번째 영화에서 노윤서는 성장하는 청년의 풋풋한 얼굴을 자신의 장점으로 소화한다. 트레이드마크인 미소는 보는 이들까지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를 짓게 만든다. 노윤서의 청순하고 차분하면서도 당찬 면모는 원작 영화에서 명랑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 진의함과 또 다른 매력으로 캐릭터 차별화를 이룬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그룹 아이즈원 출신 배우 김민주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영화 데뷔작에서 청각장애 수영선수 역할을 맡아 연기폭을 큼직하게 넓히는 데 성공했다. 언니 때문에 수영장을 다시 찾아온 용준과 수어로 처음 대화하는 장면부터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해 노윤서와 함께 자매애를 보여주는 연기는 물론, 장애를 딛고 수영선수로 성장하고자 하는 인물의 성정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연기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 김민주의 성장을 반드시 기대하게 될 것이다.



‘청설’을 시작으로 대만 로맨스 영화의 한국 리메이크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도경수, 원진아, 신예은 주연으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진영이 주연을 맡아 내년 개봉을 준비 중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연출이 대만 로맨스 영화의 특징인 만큼, 리메이크의 관건도 인물들의 감정을 얼마나 진실성 있게 표현하느냐 일 것이다. 무리한 각색 대신에 원작을 해치지 않으면서 주제에 깊이를 더한 ‘청설’이 대만 로맨스 영화 리메이크에 물꼬를 시원하게 터주었니, 다음 주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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