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걸렸다"..이승윤, 자부심으로 가득 찬 '역성'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10.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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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름모/사진=마름모


가수 이승윤이 세 번째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다. 디지털 싱글 또는 미니 앨범이 대세인 음악시장에서 이승윤은 우직하게 정규 앨범을 고집하고 있다. 아직은 자신의 고집이자 철학을 꺾을 생각이 없는 이승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은 긴 길이 만큼이나 그의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승윤은 24일 정규 3집 '역성'을 발매했다. '역성'은 이승윤이 정규 3집 선발매 앨범 발매 이후 약 3개월 만에 완전한 정규로 선보이는 앨범이다. 앨범 발매를 앞둔 이승윤은 2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가졌다.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하게 된 이승윤은 "너무 기쁘다"는 소감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3년 동안 3장의 앨범을 내게 됐어요. 1집과 2집은 그동안 쌓아뒀던 노래와 새롭게 만든 노래가 섞였다면 이번 앨범은 0에서부터 새롭게 만든 앨범이에요. 완전히 새로운 앨범을 처음 내는 기분이라 새롭고 뿌듯해요."

새로운 앨범에 대한 구상을 시작한 건 지난해 4월이다. 함께 음악을 하던 친구들과 나눈 고민과 무력감을 돌파하기 위해 새롭게 음악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완성된 이승윤은 "창작자로서의 고민은 해결된 것 같다"면서도 여전히 고민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창작자로서의 고민은 이 앨범을 만들고 완성하면서 해소됐어요. 많은 분들에게 죄송스럽고 음악인 이승윤에게도 미안하지만, 창작자로서는 음악만 잘 만들면 되거든요. 잘 나왔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앨범이 나왔어요. 다만, 음악 산업 안에서 음악인으로서의 고민은 여전히 하고 있어요. 제 고민은 끝났지만 계속해서 헤쳐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사진=마름모/사진=마름모
지난 7월 이승윤은 이번 앨범에 담긴 8곡을 선공개 앨범 형태로 발매했다. 거스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선공개 앨범은 그 자체가 흐름을 거스른 선택이었다.


"15곡 중에 원래는 '폭포'를 싱글로 발매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앨범을 낸다고 해도 한 곡을 내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폭포'를 내는 김에 다른 곡들도 선보이고 합쳐서 정규를 내면 다른 곡들을 조금이라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번 앨범에는 선발매 앨범에 수록된 8곡에 더해 신곡 7곡이 추가돼 총 15곡이 담겼다. 선공개 앨범과 마찬가지로 거스르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승윤은 새 앨범을 통해 본격적으로 '역성'의 깃발을 힘차게 흩날린다. 다만, 선공개 앨범 발매 당시 9월로 예정되어 있던 정규 앨범 발매 일정은 한 달가량 연기됐다.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데 한 번 어긋난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가 어긋나니까 줄줄이 어긋나더라고요. 슬프기도 했지만 올해 정규 앨범을 내겠다고 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올해 발매하기로 했어요. 한 번 어그러졌을 때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미뤄도 됐지만, 우리가 멋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올해 남기자고 결단을 내렸어요."

여전히 아티스트를 평가할 때 정규 앨범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산업과 시장의 변화로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승윤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이승윤은 이러한 현실을 덤덤하게 인정하면서도 다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고 설명했다.

"앨범을 내도 한 곡 밖에 듣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정규 단위의 앨범을 듣고 자란 사람이고 그 단위에 매료되어 그걸 하고 싶어서 기타를 잡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규를 내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3장의 정규 앨범을 냈어요. 소설로 치면 장편 소설, 영화로 치면 롱타임 무비를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인 거죠. 다행히 저는 그걸 부정해야 할 만한 역할의 가수는 아닌 것 같아 정규 앨범을 낸 것 같아요."



/사진=마름모/사진=마름모
타이틀곡은 앨범명과 동일 한 '역성'이다. 앨범의 주제를 관통하는 '역성'은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졌다. 이승윤은 '역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곡을 정의하게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앨범 마지막단에 만들어진 노래에요. 다른 노래를 만들고 저희끼리 품평회를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역성'을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노래가 어떤 노래라고 정의할 수 있었어요."



정규 앨범이라는 단위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노래의 길이다. 앞선 선공개 앨범의 타이틀이었던 '폭포'는 6분을 넘어가는 대곡이었다. 이번 타이틀곡 '역성' 역시 5분 이상의 길이를 자랑한다. 3분이 넘어가는 곡도 흔치 않은 흐름에 전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이승윤은 길이보다는 짜임새에 초점을 맞췄다고 노래가 길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는 아니거든요.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입장이죠. 지금의 길이가 음악의 맥락과 서사가 시작부터 끝까지 짜임새 있고 알맞게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길이가 긴 대곡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에서 이승윤은 과감하게 대곡을 선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대곡에 대해 애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승윤은 왜 그렇게 대곡을 내고 싶어 했는지를 설명했다.



"단출한 소곡도 좋아하지만 저는 정말 대곡을 좋아하고 매료돼서 악기를 집은 사람이거든요. 이걸 구현하기까지 대략 19년이 걸린 것 같아요. 대곡이란 게 혼자 만든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우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연주로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많은 분들의 수고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런 지점에서 잘 만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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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은 "내일 음악을 관둔다면 이번 앨범을 꼽고 관두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어렸을 때부터 '개쩌는 음악'을 추구했던 이승윤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구현하기까지 19년이 걸렸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16~17살에 작곡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만들고 싶었던 음악을 담은 것 같아요. 끝까지 잘 완성하고 또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서 자부심이 있었어요. 만약 앨범 하나를 꼽고 내일 음악을 관둬야 한다면 이 앨범을 꼽을 것 같아요. 파고 파다 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해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마음에 차요."

60분이 넘는 풀렝스 앨범을 발매하고 그 안에 5분이 넘는 노래를 타이틀로 내세운 이승윤의 '역성'은 분명 트렌드에 거스르고 있다. 다만, 이승윤은 의도적으로 트렌드를 거스른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트렌드를 거슬러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지금 이 노래들을 이 시점에 하나의 앨범으로 담는 게 소중한 시기라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그게 트렌드를 거스르는 모양새가 된 것 같아요. 트렌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이런 앨범을 내는 게 나쁘지는 않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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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음악은 결국 대중에게 선택받아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승윤은 "솔직히 지금 들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면서도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금 들어야 하는 이유는 솔직히 없어요. 들어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에요. 역성은 '역성혁명' 할 때의 역성인데, 정반합의 세계에서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역성이라는 순간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역사책에 기록되든 사소하든 말이죠. 역성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들에 닿았으면 좋겠어서 역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왔어요. 또 역성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를 무조건 지지한다는 뜻도 있어요. 역성이라는 용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역성을 들어주는 앨범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승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스스로에게 향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많은 역성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이승윤은 자신에게 시작한 '역성'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

"대외적으로 주관이 뚜렷한 척하지만 계속해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 스스로 많은 역성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동시에 보통 '역성'이라고 하면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흑과 백, 이분법적인 시각이 아니더라도 다각도로 역성이 필요한 순간이 많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이미지의 역성뿐만 아니라 당위성을 두르고 있는 불합리함, 부조리함에 대한 역성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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